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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정치 이긴 코미디’… TV 드라마 속 대통령,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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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대선, 코미디언 젤렌스키 압승 / 출연한 드라마 제목으로 당명 / 부패일소 이미지 표심 움직여 / “절대로 당신들 실망 안 시킬 것” / 정치경험 없어 푸틴 상대 부담 / 반정부 금융재벌이 선거 지원 / ‘꼭두각시 역할’ 의심 해소 과제

드라마 속 대통령이 현실세계의 대통령이 되는 드라마 같은 일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대선에 출마한 코미디언 출신 후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21일(현지시간) 치러진 결선투표 개표가 95% 진행된 현재 73.17%의 득표율을 기록해 현직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득표율 24.50%)를 압도했다. 무려 39명의 후보가 도전장을 낸 지난달 말 1차투표에서 30.24%로 1위를 차지한 그는 이번에 득표율을 배 이상 불리면서 오는 6월 대통령 5년 임기를 시작할 주인공이 됐다.

젤렌스키는 당선이 확실시된 후 지지자들에게 “절대로 당신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과거 소비에트연방에 속했던 모든 나라를 향해 우크라이나 시민으로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를 봐라,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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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다” 환호 우크라이나 대선에 출마한 코미디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21일(현지시간) 결선투표 출구조사 결과 압승을 거두는 것으로 나타나자 수도 키예프의 선거캠프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키예프=EPA연합뉴스


젤렌스키는 2015년부터 방영된 인기 TV드라마 ‘국민의 종’(Servant of the People)에서 우연히 대통령이 되는 고교 역사교사 역을 맡았었다. 그가 부패한 정권을 욕설을 섞어가며 강하게 비난하는 장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확산한 뒤 제자들 설득에 못 이겨 재미 삼아 출마한 대선에서 당선된다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로 현재 시즌3가 방영 중이다.

드라마 속 다소 황당한 줄거리 같은 일이 현실화한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그만큼 기성 정치권에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드라마 제목과 동일한 ‘국민의 종’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대권에 도전한 젤렌스키는 구체적 정책공약을 제시하기보다는 다른 후보들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데 선거전의 초점을 맞췄다. 특히 드라마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부패 일소, 올리가르히(특권재벌세력) 장악력 약화 약속이 젤렌스키 개인의 카리스마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유권자들의 환심을 샀다고 영국 BBC방송은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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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인에게 굴욕적 패배를 당한 포로셴코는 “선거 결과는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성을 남겼다”며 “경험이 없는 신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아마 빠르게 러시아의 영향권 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방에서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 젤렌스키가 ‘스트롱맨’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4년 친러시아 성향 대통령을 몰아낸 반정부시위 이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됐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는 친러 분리주의자와 반러 세력 간 유혈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젤렌스키는 기자회견에서 “분리주의자들과의 평화회담을 재개할 것”이라며 “휴전을 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로 망명한 반정부 성향 우크라이나 금융재벌 이고리 콜로모이스키의 ‘꼭두각시’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내는 것도 젤렌스키의 과제 중 하나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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