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30 (일)

좌파 우파 아닌 연기파 대통령…우크라이나 웃게할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투표가 치러진 21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후보(가운데)가 수도 키예프의 선거본부에서 출구조사 결과 당선이 유력하자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젤렌스키 후보는 이날 결선투표에서 73.2%를 득표한 것으로 조사돼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된다. [REUTERS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패로 찌든 기성 정치권에 질린 우크라이나 국민의 선택은 코미디언 출신의 40대 정치 신인이었다. 정치판에 뛰어든 지 1년 남짓한 코미디언 겸 배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는 부패 척결과 파격 공약을 앞세워 향후 5년간 우크라이나를 이끌 대통령 자리를 거머쥐었다. 21일(현지시간) 치러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 출구조사 결과, '국민의 종'당 후보인 젤렌스키가 73.2%를 득표해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젤렌스키와 함께 결선투표에 오른 페트로 포로셴코 현 우크라이나 대통령(53)은 25.3%를 득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표 공식 결과는 오는 5월 4일 발표된다.

젤렌스키 후보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지지자들에게 "결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의 승리 선언을 했다. 그는 "아직 공식적으로 대통령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인으로서 모든 옛 소련 국가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를 보라.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외쳤다. 출구조사 소식을 접한 포로셴코 대통령은 "젤렌스키에게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할 것"이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상임의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외국 정상들도 젤렌스키의 승리를 축하했다. 대통령 공식 임기는 오는 6월 3일부터 시작한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2015년부터 방영한 TV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된 교사 역을 맡아 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젤렌스키는 지난해 정치권에 뛰어든 후 돌풍의 중심이 됐다. 지난해 3월 드라마 제목과 같은 국민의 종당을 창당한 그는 하반기부터 차기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마지막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달 31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30.24%로 1위를 차지해 포로셴코 대통령(15.95%),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13.08%) 등 전·현직 정치인들을 누르며 이날 승리를 예견했다.

젤렌스키의 승리는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반발심리를 보여주는 결과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독립국이 된 1991년부터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부패로 몸살을 앓아 왔다. 국제투명성기구 발표에 따르면 2018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크라이나는 전체 182개국 중 120위로 말리, 니제르 같은 아프리카의 후진국과 비슷한 부패 수준을 드러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2015년 1000만달러(약 114억원)에 달하는 방산비리 스캔들과 연루돼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앞서 1차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던 티모셴코 전 총리도 2011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되기도 했다. 지난 1차 투표 후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 중 55~60%가 포로셴코에게만큼은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응답하며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을 보여줬다.

매일경제

젤렌스키도 이 점을 적극 공략했다. 그는 유세 기간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도입하겠다고 강조해 국민의 마음을 샀다. 또 대통령, 국회의원, 고위 법관의 면책특권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회의원 소환제를 제도화하고, 국민투표 활성화를 통해 국가정책에 국민 참여를 늘리겠다고 한 것도 이목을 끌었다.

경제 공약에서도 파격은 이어졌다. 그는 부가가치세 폐지를 내세웠고, 기업 법인세를 기존 누진세에서 5% 일률 세제로 바꾸겠다고 주장했다. 기존에 기업들이 세금 탈루를 일상화하고 있어 세금 감경 프리미엄으로 기업들이 투명한 기업활동을 하게끔 돕겠다는 취지다. 그 밖에 보건 및 교육 인프라스트럭처 개선, 저소득층 의료비 국가 지원 등도 약속했다.

외교 노선에서는 기존의 친서방 노선에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젤렌스키는 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이미 약속했고, 2013~2014년 벌어진 유로마이단 운동을 공식 지지하기도 했다. 유로마이단 운동은 친러시아 정권이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에 반대해 우크라이나가 EU로 통합되기를 바라는 시민들 요구로 시작된 시위다.

다만 대(對)러시아 강경 노선은 다소 수정될 전망이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에 병합당한 크림반도, 친러시아 분리주의자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반환 및 수복을 위해 러시아와 협상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젤렌스키는 앞으로 정치 신인인 그의 정치력에 대한 의구심에 맞서야 한다. 선거 기간 내내 포로셴코 대통령 측은 그가 정치적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측은 대통령이 모든 정책을 도맡지는 않는다며 인사권을 통해 이를 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류영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