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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단원이자 재심 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른바 '김학의 동영상'과, 故 장자연 사건의 '마지막 목격자'라는 윤지오 씨의 진술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판단해 보자는 내용이었다.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 전 차관인데 왜 과거에 무혐의 처리했나?', '은폐된 故 장자연 씨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윤지오 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다.' 이런 시각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박 변호사의 문제 제기는 대중의 비판을 받기 딱 좋은 내용이었다. 박 변호사라고 그걸 몰랐을까.
지금껏 쌓아 올린 업적, 진상 조사단 내에서의 헌신적인 활동. 가만히 있었으면 칭찬만 받았을 박 변호사가 비판을 무릅쓰고 글을 올린 이유는 본인의 글 속에 있었다. 현재 대중의 지배적인 시각, 바로 그것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이런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검증, 그리고 검증의 결과 발표도 한계가 있다'며, '장자연·김학의 사건이 정의롭게' 그리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에 근거해' 규명됐으면 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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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의 시각, 대중의 관점
너무 뻔해 보이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니, 대체 뭔 이야기를 하는 거냐 싶을 수도 있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과 '故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막으려는 것이냐고 의심할 수도 있다. 실제 박 변호사의 페이스북 글에는 그런 내용의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려 있다.
박 변호사의 글은 두 사건에 대한 대중의 시각이 진실에 부합하는지, 프레임화 된 시각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데 오히려 제약을 주는 건 아닌지에 대한 문제제기인 걸로 보인다. 대중의 여론이 도그마가 돼 사건의 실체 역시 여론의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규명되게 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우려로 읽혔다. 두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대중의 여론에 의해 객관적 사실보다 편집된 사실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는 않을 지에 대한 걱정으로 이해된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을 우선 보자. 이 사건에 대한 대중의 일반적인 시각은 최근 좀 잦아들었지만,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 전 차관인데, 왜 무혐의 처분했느냐'는 것이다. '권력층에 의해 여성들이 성적 착취를 당한 것 아니냐', '경찰이 의지를 가지고 진행한 수사를 검찰이 말아먹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 언론의 여론 영합, 언론의 여론 강화
대다수 언론이 이런 시각에 기대 많은 기사를 쏟아 냈다. 그 결과 여론은 더욱 강화돼 왔다. 여론에 기댄 보도가 여론을 강화시키고, 강화된 여론은 또 그런 여론에 부합하는 기사들을 양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중의 시각, 즉 여론이 옳다면 문제 될 게 없다. 여론은 잊혀진, 그리고 묻혀진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대규모 수사단까지 갖춘 건 여론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들이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대중이 시각이 옳지만은 않으면 어찌 될까? 박준영 변호사의 문제 제기는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을 취재하고 있는 일부 기자들에겐 몇 가지 고민이 있다. 6년간 잊혔던,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대중의 시각이 특정 방향으로 강화된 해당 사건을 취재하면 할수록 대중의 시각과는 상반되는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해서 그것이 범죄 혐의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여성들이 성매매를 암시하는 듯하다 대화를 서로 주고받거나, 사건화 된 과정 등을 보면 김학의 전 차관 등 가해자로서의 남성과 피해자로서의 여성이란 이분법적 구도로 보기 만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 '경찰 수사는 제대로 됐는데, 검찰 수사가 이를 뒤집었다'고만 보기 힘든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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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의 힘, 여론의 무서움
하지만, 이런 내용을 기사화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여론이 강력하면, 기사의 방향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때론 '대중의 눈높이'라는 게 기사의 방향성으로 정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론이 원하는, 여론에 부합하는 기사는 쓰기 쉽지만 이에 반하는 기사를 쓰는 건 10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현실적 한계도 있다. 결국,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지만, 여론에 기댄 주문에 의해 쓰인 기사들로 여론에 대한 합리적 질문은 설 자리를 더욱 잃게 된다.
언론뿐만이 아니다. 여론은 수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달 25일,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에 김학의 전 차관 사건 수사 관련 수사 권고 의견서를 제출했다. 과거사위의 결과는 익히 알려진 바다. 김 전 차관의 뇌물 수수 혐의, 그리고 곽상도 전 민정수석과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의 직권 남용 혐의에 대한 수사 권고였다.
하지만, 당시 조사단의 권고 의견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혐의에 대한 부분이 정작 수사 권고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의견서의 4/5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던, 성범죄 피해 여성 중 한 명과 건설업자 윤중천 씨 등의 쌍방 무고 혐의에 대한 내용이었다. 조사단이 가장 의지를 가지고 살펴본 부분이지만, 재조사의 명분이 됐던 성범죄에 대한 수사 부실이라는 명제와 상충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과거사위도 여론을 의식했던 것일까. 무고 부분은 지난달 25일 수사 권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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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오 씨의 증언도 검증이 필요"
박준영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윤지오 씨와 관련한 언급도 했다. 박 변호사는 "윤지오 씨의 진술은 검증이 필요 없는 증언이 아니다"고 적었다. 윤 씨의 증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자신의 책에서 '장자연 사건과 장자연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라고 스스로를 설명한 윤지오 씨는 많은 역할을 했다. 전직 조선일보 기자가 故 장자연 씨에 대한 성추행 혐의로 기소되는데 윤 씨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묻혔던 진실을 밝혀낸 데 대해 우리 사회는 윤 씨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윤 씨에게, 그리고 윤 씨에 진술에 주목하고 있는 더 큰 이유는 윤 씨가 장자연 문건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를 직접 확인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 장자연 문건의 목격자들
과거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 등을 살펴볼 때, 장자연 문건 전체를 확인한 사람은 극소수다. 故 장자연 씨의 매니저 유 모 씨, 장 씨의 스타일리스트 이 모 씨, 장 씨의 유가족, 그리고 문건을 봉은사에서 소각한 날 보았다는 윤지오 씨 등이다. 이들 외에 매니저 유 모 씨를 찾아왔다는 기자 3명이 문건 전체를 봤는지는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고, 다른 사람이 봤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리고 현재 '장자연 문건'이라고 불리는 건 2009년 KBS가 입수해 보도하고, 재판에서 증거 기록으로 사용된 4장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검 진상조사단이 故 장자연 씨 사건을 재조사하고 있는 현재, 문건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사람은 윤지오 씨뿐이다. 문건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매니저 윤 씨와 장 씨 유가족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결국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윤지오 씨의 입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윤 씨의 진술과 증언은 사회적 영향력을 더 갖게 됐다. 윤 씨가 리스트에서 확인했다는 정치인 이름을 뉴스 생방송 중에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가 사과까지 하게 된 한 언론사의 사례는 윤 씨가 얼마나 큰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렇게 윤 씨 증언의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사자는 사망했고, 문건과 관련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입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故 장자연 씨 사건의 진상 규명에 있어 사실상 윤지오 씨가 키를 쥐고 있으니 좀 더 객관적으로 엄밀하게 검증해 보자는 것이다. 한 사람의 진술에 의해 규명된 진실은 그 진술이 흔들릴 때 규명된 진실도 흔들릴 수 없는 만큼 좀 더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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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된 4장의 문건 외의 장자연 문건은 몇 장일까
최근 윤지오 씨의 진술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 등장하는 변호인의 실제 인물인 박훈 변호사, 윤 씨와 약 10개월간 연락을 주고받았다며 관련 메시지를 공개한 김수민 작가 등이다. 박 변호사의 주장은 과거 사건이나 재판 기록,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볼 때 윤지오 씨가 목격했다는 장자연 문건 속에 포함된 '장자연 리스트'가 과연 존재하느냐는 거다.
김수민 작가는 윤 씨와 주고받았던 메시지 내역이나 통화 내용, 만나서 들었던 이야기 등을 종합해 봤을 때 윤지오 씨 진술 신빙성을 100% 수용하기는 힘든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윤 씨가 봤다는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서는 윤 씨가 문건을 수사 과정에서 봤다고 자신에게 이야기했다는 취지의 주장도 한다. 윤지오 씨는 이에 대해 박훈 변호사가 해당 사건에 대해 무엇을 아냐, 김수민 작가의 주장에 대꾸할 필요성이 없다는 취지로 반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훈 변호사와 김수민 작가의 의문과 별개로 필자 개인의 의문도 있다. 윤지오 씨가 여러 언론과 한 인터뷰에 바탕한 기초적인 의문이다. 장자연 문건은 여러 버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단 윤 씨는 자신이 본 문건은 모두 7장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것이 장자연 문건의 전체라고 덧붙인다. 윤지오 씨는 자신의 책에 2009년 당시 KBS가 입수해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기도 한 문건 4장을 첨부해 놨다. 자신의 본 7장의 문건 중 4장이 이른바 KBS 문건이라는 취지로 보인다.
그렇다면 재판을 통해 공개된 문건 외 남은 문건은 3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지오 씨는 재판을 통해 공개된 4장의 문건 외 자신의 본 문건은 4장이라고 말했다. '4+4=7'이 되어버리는 상황. 이와 관련해 윤지오 씨와 연락이 되었는데, 질문을 하다 추가로 질문을 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명확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장자연 문건의 내용과 관련해서 윤 씨와 문건을 봤다는 다른 사람들의 진술이 부딪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답변도 질문이 중단돼 듣지는 못했다.
● 대중을 위한 정의로운 재조사
김학의 전 차관 사건과 故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해 재조사와 재수사를 벌이게 된 건, 과거 수사 결과에 대해 대중의 의구심이 많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묻힌 진실, 감춰진 진실 규명을 바라는 대중의 힘이 조사 기간 연장과 대규모 수사단 출범까지 이끌어 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의는 지연되더라도 바로 세워져야 한다.
하지만,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과 그 결과가 대중의 시각에만 국한되어서는 곤란하다. 특히 오래돼 증거가 마땅치 않고, 당사자가 없는 사건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특정 인물에 의해 규명된 진실은 특정 인물의 증언이 흔들릴 때 진실 자체도 흔들려 버릴 우려가 존재하는 만큼 더욱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과 故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합리적 의문 제기가 필요한 이유다.
김학의 전 차관 사관과 故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가 대중이 원하는 결과가 아닌 대중을 위하는 결과로 나오기를 기대한다. 설사 조사 결과가 대중이 원하는 것이 아닌, 현재 대중의 지배적 시각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야 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다. 우스개 소리로 회자되듯 현재의 재조사가 훗날 또 재조사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대중이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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