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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일회용품 사용과 퇴출

폐비닐 속 기저귀ㆍ국물… 쓰레기 대란 1년, 아직도 ‘재활용 후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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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품 선별장 가보니]

직원 “상태 나아졌다”는 말 실감 안 나… 반입량 30% 재활용 불가능

일회용 플라스틱컵 재질 달라 폐기… 페트병 라벨 분리 안돼 25% 버려져
한국일보

15일 인천 남동구 재활용품 선별장 현대자원 직원들이 컨베이어벨트 위의 재활용품 폐기물 가운데서 페트병 등 재활용 가치가 있는 자원을 골라 내고 있는 한편 최동철(사진 왼쪽) 대표가 재활용이 되지 않는 음식물 등이 뒤섞인 쓰레기를 가리키고 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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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수입금지조치로 폐기물 재활용 업체들이 아파트에서 나오는 폐비닐 수거를 거부하면서 ‘폐비닐 대란’이 벌어진 지 꼭 1년이 지났다. 그 이후 정부가 커피전문점에서 일회용컵ㆍ빨대 사용을 금지하고, 대형마트에서 1회용 비닐사용을 제한하는 등 잇따라 폐기물 줄이기 정책을 내놨다. 표면적으로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 재활용 쓰레기 수거가 잘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해외로 불법 수출된 폐기물이 되돌아오고 곳곳에 쓰레기산이 늘어나는 등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폐비닐 대란 1년을 맞아 찾아 비닐ㆍ플라스틱 재활용업체로부터 공통으로 들을 수 있었던 목소리는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이었다. 유럽 플라스틱ㆍ고무 생산자 협회인 유로맵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플라스틱 사용량은 2015년 기준 1인당 연간 132.7㎏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넘쳐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사회적 문제가 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비닐ㆍ플라스틱 쓰레기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쓰레기 대란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재활용품 사이에 기저귀가 왜?’

“1년 전에 비하면 그래도 조금 좋아진 편이에요. 폐비닐대란의 영향 때문인지, 이전보다는 재활용 쓰레기 상태가 약간은 나아졌어요. 음식물 묻은 것도 줄었고….”

지난 15일 인천 남동구에 있는 재활용품 선별장 현대자원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재활용품을 골라내던 직원이 잠시 숨을 돌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 곳에서 10년간 일해온 베테랑인 정모(59)씨는 “대란이 있기 전만 해도 온갖 이물질이 묻은 채로 들어오는 재활용품들이 많았는데 1년이 지난 요즘에는 상태가 조금 나아진 것이 눈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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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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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컨베이어벨트 앞으로 다가갔지만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찌그러진 페트병, 음료수 캔, 포장 비닐, 라면 봉지 등이 뒤엉킨 채 순식간에 지나갔다. 폐기물 더미를 뒤적거릴 시간도 없었다. “캔은 자석으로, 비닐은 강한 바람을 이용해 골라 내니 페트병 위주로 골라내 담으라”는 정씨의 말에 따라 재활용품을 찾으려 했지만 어지럽게 뒤엉킨 비닐뭉치 사이에서 페트병과 유리병을 쏙 집어내는 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어렵게 찾아낸 페트병에는 음식물이 묻은 나무젓가락이 들어있었다. “그건 재활용 못해요. 담배꽁초나 이물질이 들어가 있는 건 골라내지 않아도 돼요.”

정씨는 선별작업을 곤란하게 하는 요인으로 특히 음식물과 기저귀를 꼽았다. 재활용품과 뒤섞인 음식물은 선별 작업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재활용률을 떨어뜨리는 주된 원인이다. 일반 폐기물인 기저귀는 말할 나위도 없다. 정씨는 “음식물이 묻은 용기는 최소한 한 번만이라도 헹궈서 버리고 기저귀처럼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는 재활용품과 함께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선별장 직원들이 공통으로 꺼리는 건 김치국물과 짬뽕국물 등 순식간에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음식물이었다. 최동철 현대자원 대표는 “일회용 플라스틱컵, 비닐봉투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지만 선별장에 반입되는 양은 아직 체감할 만큼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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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재활용 폐기물 대란의 중심에 있었던 폐비닐은 가래떡 모양의 고형연료로 압축돼 발전소나 공장의 화석연료 대체품으로 쓰인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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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버리기만 해도 재활용률 높일 수 있어

수도권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선별장 가운데 하나인 이 곳에는 서울과 인천 5개구에서 하루 평균 200톤, 매달 5,000톤 분량의 재활용 폐기물이 들어온다. 단독ㆍ다세대주택 등에서 배출한 재활용 폐기물이 반입되는데 비닐류가 절반(2,500톤)가량을 차지한다. 페트병(300톤), 폴리에틸렌(PE)ㆍ폴리프로필렌(PP) 등의 플라스틱이 250톤, 유리병이 200톤 정도라고 한다.

최동철 대표와 함께 폐기물 더미를 뒤적였다. 정체불명의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더미는 언뜻 봐도 100% 재활용품처럼 보이지 않았다. 재활용품 사이로 옥수수 자루, 헤진 구두, 고무장갑, 종이컵, 나무 판자, 케첩 범벅인 햄버거 봉지 등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가 뒤섞여 있었다. 최 대표는 “반입되는 5,000톤 가운데 30%인 1,200톤 정도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상태의 재활용품이거나 애초부터 재활용품이 아닌 폐기물이어서 소각장이나 매립지로 보낸다”며 “재활용품 폐기물의 반입 상태만 좋아도 버려지는 양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선별장에서 버려지는 폐기물은 소각되거나 매립되는데 처리비용만 톤당 20만원 안팎이 든다고 한다.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버려지는 것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커피전문점이나 편의점 등에서 쓰이는 일회용 플라스틱컵이다. 페트(PET) 재질로만 만드는 페트병과 달리 일회용 플라스틱컵은 폴리스티렌(PS), PP 등 재질이 서로 다른 데다 브랜드 이름이나 로고 등이 인쇄돼 있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폐기된다. 인쇄를 지우려면 화학약품을 써야 하는데 비용이 들뿐더러 환경오염도 가져온다. 최소한 재질만 통일해도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지만 현재로선 정부가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그나마 이 선별장은 규모가 크고 최신 설비를 갖춰 선별 작업이 비교적 용이한 편이다. 인력ㆍ설비가 충분하지 않은 영세업체의 사정은 훨씬 나쁘다. 서울의 한 소형 재활용 선별 업체 대표는 “상태가 좋지 않거나 재활용품이 아니어서 버리는 분량이 반입되는 것의 절반 정도인데 그 처리비용만 한달에 수천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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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인천 남동구에 있는 재활용품 선별장 현대자원에 서울과 인천 5개구에서 반입된 재활용품 폐기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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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 무색으로, 라벨은 비중 1 이하로 통일해야

재활용품으로 분리 배출되는 플라스틱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페트병은 얼마나 재활용되고 있을까. 17일 찾은 경기 화성의 페트병 전문 재활용업체 새롬ENG의 유영기 대표는 “하루에 60~100톤의 페트병이 들어오는데 라벨을 뗄 수 없어 25% 정도가 폐기물로 버려진다”고 말했다. 트럭들이 쏟아낸 페트병 더미에는 알루미늄 캔, 비닐봉투, 유리병, 종이 같은 다른 재활용품은 물론 일반 쓰레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페트병 재활용은 뚜껑과 라벨을 분리해야 해 복잡하다. 선별장에서 가져온 페트병들은 강한 바람으로 몸통과 라벨을 분리한 다음 수작업 등을 거쳐 색상별로 구분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라벨은 일부에 지나지 않아 페트병을 잘게 조각내 세척한 뒤 다시 선별한다. 세척 과정만 10차례, 풍력으로 페트 조각과 라벨을 분리하는 과정만 5차례 거치는데도 분리되지 않는 ‘최종 폐기물’이 나온다. 유영기 대표는 “물에 가라앉는 비중 1 이상의 라벨이 많아서 이 라벨과 조각이 분리 안 된 채 배출되는 양이 많다”며 “이렇게 나오는 것만 한 달에 300톤 가까이 되는데 비중 1 미만의 라벨로 만들어지기만 했어도 대부분 분리해서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국내 여건을 고려할 때 절취선 여부와 관계 없이 비중 1 이상의 라벨은 쓰지 않도록 해야 페트병 재활용률이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나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유 대표는 “비중 1 이상의 라벨 때문에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페트병으로 인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이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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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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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최근 페트병 재활용률을 높이고자 페트병 등 9개 포장재를 재활용 용이성에 따라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 등 4등급으로 나누고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를 만드는 업체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을 더 많이 내도록 하기로 했다. 하지만 분리가 어려운 비중 1이상이면서 접착제를 쓰지 않는 경우에는 등급을 오히려 상향조정하는 등 환경부의 대책이 철저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은 “비중 1 미만의 물에 뜨는 접착식 라벨을 사용해 재생 페트 조각의 품질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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