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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노숙 퇴역군인 자해하자…주거·인간관계까지 `맞춤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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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2부 ④ ◆

매일경제

미군에 복무하다 퇴직한 A씨는 지난해 9월 자해를 시도해 미국 뉴욕주 소재 뉴욕 재향군인 보훈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치료받는 내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하했다. A씨가 자해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정신질환을 앓던 그는 과거 5년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퇴원한 후에도 자해 문제로 종종 병원을 찾곤 했다.

문제가 반복되자 그는 '퇴역 군인 자살 예방·치료 향상 프로그램(REACH VET)'상에 자살 위험이 무척 높은 상위 0.1% 환자로 선별됐다. REACH VET는 자살 위험이 높은 퇴역 군인을 사전에 알아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미국의 모든 보훈병원이 2017년부터 도입한 빅데이터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퇴역 군인의 건강·심리상담 기록, 주거 상태 등 수십 가지 요소를 분석해 매달 자살 위험이 높은 환자 리스트를 병원에 제시한다.

A씨의 이름이 REACH VET 리스트에 오르자 뉴욕 재향군인 보훈병원 자살예방팀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이 팀에 소속된 임상심리학자 미아 임 박사(39·사진)는 "수입 없이 노숙생활을 하던 그에겐 단순 치료를 넘어선 사회·경제적 지원이 절실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자살예방팀은 의사·간호사는 물론 심리학자, 사회복지사까지 A씨가 있는 곳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복합 케어를 실시하기로 했다. A씨가 뉴욕 주정부에서 빈민층에게 제공하는 주택 바우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줬고, 금융지원책을 알아본 뒤 A씨가 지원금을 받도록 해줬다.

이처럼 미국 보훈병원은 퇴역 군인의 자살률이 일반인에 비해 1.5배 높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다양한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퇴역군인 중 상당수는 참전 경험이 있는 군인들이며 군 제대 후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는 사례가 많아 면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자살 고위험 환자를 사전에 선별하고 치료하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복합적인 관리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보훈병원에선 퇴역 군인 환자를 대상으로 '컬럼비아 자살 위험 척도' 검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간단한 설문조사를 통한 1차 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정신과 전문의가 2차 심층 진단에 들어간다. 최종 검사 결과 자살 위험이 높다고 판명된 환자의 진료 기록에는 90일 동안 'HRL'이라고 쓰인 주의 깃발이 붙는다.

임 박사는 "주거와 금융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등 복합적인 접근을 하지 않으면 자살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뉴욕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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