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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이병천 “촛불 꺼진 촛불정부, 기득권의 벽 타령만 하면 다를 게 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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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평가 토론회 기획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경향신문

진보·개혁 지식인들의 모임인 지식인선언네트워크의 연속 토론회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좌표는 있는가’를 기획한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대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정부의 보다 담대한 개혁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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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중심의 새 패러다임, 개혁의지와 역량 부족으로 담대하게 추진 못하고 궤도 수정 거듭

소득주도성장이란 말만 사라진 게 아니라 정책의 우선순위도 밀려…개혁정부에서 관리정부로 전환

재벌·건물주 앞에서 작아져버린 조세·재정정책, 막대한 세수 남았음에도 양극화만 심화시켜

제 역할 못한 공정경제, 왜곡된 산업 생태계 혁신 못 해…시민이 준 권력의 의미 되새겨 초심 되찾길


다음달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 3년째를 맞는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세 바퀴로 굴러가는 사람 중심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했다. 그러나 고용부진 등의 논란을 겪으면서 정책은 부침과 궤도수정을 거듭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현재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과 탄력근로제 합의를 두고 노동계와 갈등을 빚고 있으며 소득주도성장 대신 경제활력 제고와 포용성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을 주도했던 지식인선언네트워크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사회·경제정책을 평가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연속 토론회를 19일부터 3주간에 걸쳐 연다. 토론회를 기획한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촛불정부의 촛불은 거의 꺼졌다”며 “문재인 정부는 개혁정부에서 관리정부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득권 구체제의 벽 외에도 정부의 개혁의지, 정책역량, 인적역량의 부족이 개혁 후퇴의 원인”이라면서 “정부 출범 초의 방향이 적절한 방향이었으며, 세계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더욱 담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1문1답.

- 다음달 문재인 정부가 출범 3주년을 맞는다. 지난 2년간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책무를 완수하겠다며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이 패러다임의 전환이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다. 정부가 당초 제시한 패러다임은 약자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한국 발전모델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이었다.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임금소득자들의 소득이 늘었고 소비도 늘었다. 복지 측면에서 ‘문재인 케어’나 한국형 실업급여를 도입하고,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나 산업은행의 적극적 역할 등 재벌을 규율하는 수단이 마련됐다. 그러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담대하게 추진해나가지 못했고, 결국 정책기조 자체가 변질된 것 같다. 현시점에서 정부는 개혁정부에서 거의 관리정부로 전환한 모양새다.”

- 정부가 추구하는 바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나.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지난해 7월 무렵이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물러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났다. 두번째는 지난해 12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경제수장이 교체되고,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때다. 규제완화가 전면에 나오고 재벌 중심 성장으로 되돌아가는 변화가 나타난다. 소득주도성장이란 열쇳말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중요한 개혁정책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두 차례 전환점을 거치며 정부는 친재벌로 선회하고, 건물주 앞에서 작아지고, 조세·재정정책 앞에서도 감세와 재정건전성에 집착하는 등 그야말로 작은 정부를 벗어나지 못했다. 노동존중정책도 뒷걸음쳤다.”

- 정부 경제정책이 왜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보나.

“부동산정책과 재정정책의 실패를 지적하고 싶다. 부동산정책은 처음부터 준비와 의지 모두 태부족이었다. 자산불평등 및 불로소득 문제를 풀지 못하면 소득주도성장은 어렵게 돼 있다. 그리고 조세재정 정책에서 훨씬 더 담대함이 있어야 했다. 복지국가로 전환하려면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분명 쉽지 않다. 그러나 시민들이 촛불항쟁으로 모멘텀을 만들어줬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지만, 동시에 그 필수 구성요소인 재정정책은 보수주의적으로 운영했다. 그 결과 막대한 세수가 남았는데 획기적인 가계소득의 증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엄청난 역설이다. 재정보수주의는 지난 보수정부 9년간 양극화를 심화시킨 큰 원인인데 바로 그 함정에 빠져 궤도수정을 자초했다.”

- 고용악화 부문은 현 정부 정책에서 뼈아픈 부분이다.

“담대하고 과감한 정책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고용부진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인구적 요인도 있고 제조업 구조조정이 발생한 이유도 있다. 최저임금이 고용악화를 불러올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다. 다른 정책수단들을 병행해서 패키지로 담대하게 밀고 가야 새 진로를 열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이다.”

- 경제가 어려워 재벌개혁의 추진력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재벌개혁을 꼭 해야만 열린 시장경제가 된다. 경제력 집중이란 재벌 총수가 기업집단 내에서 힘을 마구 휘두른다는 의미도 있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력이 재벌에 집중된 상황에서는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이 출현해도 시장이 열리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 점에서 경제력 집중 완화 정책이 거의 없다는 점이 실책이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 부문에서 공정경제 부문이 제 역할을 못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기대했던 것에 비해 너무나 의외의 결과였다.”

- 정부는 현재 혁신성장과 경제활력 제고에 방점을 찍고 있다.

“혁신성장이 혁신적이지 못하다. ‘혁신=기술혁신’으로만 굉장히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 시절의 규제완화식 창조경제와 다를 바 없다. 사회적·제도적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처럼 재벌이 주도하는 폐쇄적 혁신은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창조 없는 파괴를 불러온다. 재벌이 지배하는 왜곡된 기업 및 산업 생태계에 새로운 제도적 혁신바람을 일으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공정경제가 미진하니 혁신성장이 소득주도성장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게 됐다.”

- 현 정부는 왜 담대하지 못하고 급속도로 개혁의지가 후퇴했을까.

“흔히 기득권의 벽이 두꺼워서라는 이야기를 한다. 3분의 1 정도만 맞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이 벽을 부수라고 시민들이 촛불로 현 정부에 권력을 쥐여준 것이기 때문에 기득권 타령만 한다면 보통정부와 다를 바 없다.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싶다. 첫째, 개혁의지가 부족했다. 재벌을 흔들면 경제가 단기적으로 불안해질 수 있고 선거에서 표를 적게 얻을 수 있다. 정치적 설득을 통해 개혁에 대한 동의를 넓혀나가는 방식으로 이 난제를 뚫고 나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두번째는 정책역량이 부족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성장의 전부인 것처럼 흘러가도록 방치했다. 세번째는 팀의 역량, 즉 인적 구성의 취약함이다.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로 발탁했으나 이들의 힘만으로 개혁을 끌고가기 어려웠다.”

- 문재인 정부 1·2기 경제수장들을 평가한다면.

“김동연 전 부총리는 기재부 비주류였고 본인도 이를 의식하고 있던 것 같다. 청와대와의 불협화음이 이슈가 됐지만 정권 초반에는 오히려 청와대의 개혁의지를 부득이 뒷받침하려는 모습도 없지는 않았다. 한편 홍남기 현 부총리는 굉장히 노련한 사람이다. 1기 경제팀이 바뀌고 나서 지금은 마찰이 없다고 하는데, 내용적으로는 기재부의 뜻대로 경제정책이 끌려가고 있는 것 같다.”

-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이다. 다시 경제정책 방향전환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촛불정부의 촛불은 거의 꺼진 게 아닌가 한다. 각오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 됐다. 촛불정부로서 각오를 새롭게 하라고 비판하는 동시에 대안과 진단을 함께 모색하자는 의미에서 이번 연속 토론회를 준비한 것이다.”

- 정부에 제언을 한다면.

“이 정부는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못했다. 현재 세계경제가 급속도로 둔화되고 있다. 수출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고 그럴수록 원래 정부가 출범 초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진작하려 했던 내수의 중요성이 커진 상태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보수언론이나 재벌에 휘둘리지 않는 담대함이 필요하고, 출범 초 구상했던 세 바퀴 축을 새롭게 가져가야 한다. 또 한 가지, 인재풀을 더 넓혔으면 좋겠다. 지금 정부의 모습은 촛불정부라 하기엔 지나치게 끼리끼리 한다는 인상을 준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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