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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예타는 정말 비수도권에 불리했나?…예타 개편의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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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 평가 토론회...예타 개편안으로 ‘제도 무력화’

“비수도권, 경제성 전혀 없어도 정책성 평가서 높은 점수 받으면 예타 통과”



경향신문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 대상에 서부경남KTX가 포함된 29일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 입구에 이를 환영하는 대형 펼침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개편안을 두고 예산 낭비를 막는 제도 도입 취지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정책성 평가 비중을 늘려 경제성 평가에서 최하위점수를 받은 사업도 예타를 통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는 1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좌표는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지난 10년간의 예타 결과를 보면 비수도권 지역이 수도권 지역에 비해 불이익을 받았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 대규모 국책사업의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한 예타 전면 개편안을 발표했다. 모든 지역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지역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따른 것이다. 예타제도는 공공투자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제도가 도입된 후 지난해까지 386조3000억원 규모의 849개 사업에 대한 예타가 진행됐다. 이 중 35.3%인 300개 사업(154조1000억원 규모)이 타당성이 낮은 것으로 조사돼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김 교수는 “2009년과 2018년까지 예타 통과율을 보면 수도권이 71.6%, 비수도권은 65.3%로 6.3%포인트 차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타제도의 도입 취지는 무분별한 건설사업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높은 정책성이 낮은 경제성을 상쇄하고도 남을 때만 예타를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실제 김 교수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비용 대비 편익(B/C)이 0.8~0.9인 사업들은 통과율이 50%였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는 통과율이 54.2%였다. 경제성만 고려하면 B/C가 1보다 적은 사업은 예타를 통과할 수 없다. 정책성을 고려했기 때문에 경제성이 떨어저도 상당수가 예타를 통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경제성이 높아야 예타를 통과할 수 있을까. 2001년부터 2008년까지 B/C값이 0.3에 미치지 못한 사업, 2009년부터 2018년까지는 0.7 미만인 사업은 모두 탈락했다. 김 교수는 “대체로 경제성이 낮은 사업들은 정책성도 낮은 경향이 있다”며 “B/C값이 0.7 이상인 건설사업의 정책성 평균점수는 0.56인데 비해 B/C값이 0.7미만인 건설사업들의 정책성 평균점수는 0.51이었다”고 했다. 정성적 평가로 이뤄진 정책성 평가가 0.828 이상인 경우가 드물다는 점도 작용했다.

경향신문

지식인선언네트워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좋은예산센터, 어네지기후정책연구소 주최로 1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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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가 내놓은 예타 개편안에 대해서도 우려를 보였다. 개편안을 적용할 경우, 경제성 비중을 낮추고 정책성 비중을 높임에 따라 기존의 탈락에서 통과로 바뀐 사업이 7개였다. 이들 사업 중 3개는 B/C값이 0.25에도 못 미쳤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기존에는 경제성 점수가 최하점이면 정책성 점수가 0.828 이상이어야 예타를 통과할 수 있다”며 “개편안에는 0.716 이상이면 통과할 수 있는데, 이는 사업시행 평가 부분에서 ‘약간 적절’로 평가만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점수”라고 했다.

평가 주체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기재부 주관의 재정사업평가위원회로 옮겨간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교수는 “KDI 공공투자관리센터는 정성평가가 정량평가인 경제성 점수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평가를 관리한 것으로 짐작한다”며 “반면, 재정사업 평가위원회가 비교적 공정하게 평가하더라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약간 적절’ 정도의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 예타 종합평가(AHP)점수만 공개하지 말고 이 사업의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기여도 등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예타의 취지를 살리자면 예타 통과를 위한 B/C 값 최소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배균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이란 형평성 논리를 근거로 경제성 중심의 예타를 면제하자고 주장했다”며 “그러나 지금의 지역균형정책은 토건 중심적 지역개발, 지자체 별로 나눠먹기 방식의 예산 분배”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토건적 개발과 기업유치 지향적 지역발전 전략보다 교육, 복지, 문화 분야에 지출해야 한다”며 “좋은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을 향상해 지방에 사람이 오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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