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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피해자일 때는 무관심…‘피고인’ 되니 나라 도움받는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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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4월20일은 ‘제39회 장애인의 날’

세계일보

게티이미지 제공


재판 등 형사·사법절차에서 비장애인보다 못한 대우를 받거나, 인권침해를 당하는 장애인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1년째인 올해 △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춘 고속·시외버스 운행(9월) △보건복지부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 등을 토대로 장애인 권리가 대폭 향상될 거라는 일각의 기대와 대비된다. 최혜리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에 따르면 2008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접수한 형사·사법절차 장애인 차별 진정은 총 427건으로 집계됐다.

◆혐오 가해자 고소했다가 ‘명예훼손죄’로 몰린 장애인

1급 뇌병변 장애인 박모씨는 자기를 괴롭힌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A씨를 고소했다가 명예훼손죄로 몰려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검찰이 피해자인 자신의 진술을 믿지 않았으며, 조사 과정에서는 자기를 변호한 인권 활동가에게 “고소 당사자가 아니니 가만히 있으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명예훼손죄로 ‘피고인’이 되어서야 국선변호인 도움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1년간 센터에서 근무한 박씨는 ‘문서작업을 제대로 못 한다’며 A씨의 타박을 받았다고 한다. 박씨는 A씨가 업무능력을 향상시키겠다면서 ‘동화책 받아쓰기’를 지시하고 자주 폭언을 퍼부었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깊어졌지만, 어렵게 얻은 일자리를 잃을 것 같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고 했다.

나중에 센터를 나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지만 A씨는 무사했다. 장애인 인권단체 도움으로 재차 사무국장을 고소한 박씨에게 검찰은 “당시 사무국장에게 문제를 제기했느냐. 인권침해라고 하지 않으면 그 사람(사무국장)이 알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18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열린 ‘형사·사법절차에서의 장애인 인권보장 방안’ 토론회에서 “경찰의 기소 의견 송치에도 검찰은 가해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며 “도리어 사무국장의 인권침해를 공개 폭로했다는 이유 때문에 명예훼손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피고인이 되고서야 나라의 법률적 지원 받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장애인 인권 보호는 활동가 몫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울분을 토했다. 중증 언어장애인 박씨는 그림이나 글자를 가리켜 의사소통할 수 있게 고안된 ‘보완대체의사소통(AAC)’ 장치를 통해 자신의 사례를 발표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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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직무교육에 ‘장애 인권교육’ 넣어야…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가?

전문가들은 장애인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형사·사법기관 고민이 깊지만, 일부 관계자의 무관심으로 현장에서 장애인 차별 사례가 발생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이 어떤 경찰관·검사·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절차·결과를 마주한다”며 “장애 관련 인권교육을 (검찰과 경찰의) 직무교육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애인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외에는 해결책이 사실상 없다”며 “‘이런 건 사건이 되지 않는다’라거나 ‘이런 건 해봐야 소용없다’는 기관 관계자의 태도도 장애인들을 좌절시킨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인은 혐오 범죄뿐만 아니라 억울함을 호소하는 형사·사법절차에서 2차 피해를 받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檢 “진술조력인 지원…2019년 3차례 인권교육 예정”

대검찰청 관계자는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가 13세 미만의 아동 또는 신체·정신적 장애로 의사소통이나 의사표현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중립적 지위에서 상호간 의사소통을 중개·보조하기 위해 진술조력인을 지원하고 있다”며 “지난해 11월에는 대검찰청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장애인식 개선 및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장애인 인권보호‘ 주제로 인권교육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대검 인권부는 장애인 전담검사 및 수사관을 대상으로 장애 인식개선 교육 등 인권교육을 올 5월과 6월, 9월에 실시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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