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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문제는 일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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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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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뉴스에 낯익은 동네가 나왔다. ‘새벽 5시의 남구로역 인근, 일을 찾는 중국 사람들로 북새통, 건설경기 침체로 뽑혀 나가는 사람은 극소수, 포기하지 못한 사람들이 늦게까지 서성’ 낯익으면 반가워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닐 때도 있다.

경기가 나빠서 일거리가 줄었겠거니 짐작은 했으나 어스름 새벽에 차도까지 꽉 채운 무리가 하루치 노동력을 팔겠노라 아우성치다 허탈하게 돌아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남구로역을 통과할 때마다 눈치 없이 왜 출근 시간에 인도를 에워싸고 있냐며 지나쳤다. 담배 연기가 곱지 않았다. 그들이 새벽잠을 설치고 나올 때 가졌던 희망을 식히기엔 시간과 담배와 동료가 필요한가 보다. 도모할 수 없는 내일에 대해서도 면역력을 키울 의식이 필요한가 보다.

십장을 하던 영희네 아버지가 건설사에서 돈을 받지 못해 인부들 임금 못 주고 체류 기간마저 도과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사업수완을 의심했다. 일거리가 없다며 늙은 어머니에게 나오는 생계비에 얹혀사는 중국인 아들과 손자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아들의 근면성과 생활태도를 의심했다. 근로 의지만 있다면 아버지 하나 믿고 이주한 제 아이 하나 감당 못 하겠냐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너무 야박하고 무지한 인식이었나 보다.

그동안 품었던 오해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 문제는 이제라도 새벽녘에 나서면 일을 나갈 수 있는가? 월세부터 내고 식비를 해결하고 휴대전화 요금을 내고 아이들에게 약간의 용돈을 주며 너는 공부하라고 한마디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 모르겠다. 우리가 영희네와 동포 할머니네 사정을 알게 된 게 벌써 1년이 되었다. 최근에도 사정이 딱하다는 외국인 가정 아이들이 소개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이주한 가장에겐 혈혈단신 어찌어찌 살다 돌아가는 동료들이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세계일보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이 일할 현장이 없어지면 어디서 일을 하지?” 챗지피티는 망설임 없이 명랑하게 대답했다.

‘많은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없을 때 인력 사무소를 통해 새로운 현장 일자리를 찾습니다. 인력 사무소는 건설현장 외에도 물류센터, 창고, 제조업체 등 다양한 업종에 일자리를 소개해 주기 때문에 임시로 일할 기회를 얻기 좋습니다.’ 유익한 정보이길 바란다.

일할 기회를 얻기 좋으나 ‘임시’로 일할 기회라니 틀린 정보는 아닌 것 같다. 힘겹게도 인생은 길고 날마다의 삯을 요구한다. 자본이 이윤의 논리에 따라 펼쳤다 거두는 임시 일자리를 믿고 인생을, 가족을 살릴 수 있겠나?

인구소멸이라는 경고음에 모두의 마음이 급해졌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민정책에 답이 있다며 대안을 내놓고 있다. 과연 외국인이 정주할 수 있을까? 한국인이 놓아버린 결혼과 출산과 양육의 꿈을 외국인은 꿀 수 있을까? 멀리 내다봐도 답이 없는 건지, 일부러 멀리 보지 않는 건지…. 잘 모르겠다. 뉴스도 보지 말아야겠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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