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시행 넉달… 강제성 없어 실효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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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새로 산 자동차의 결함을 발견하면 교환 및 환불을 요구할 수 있게 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일명 한국형 레몬법)’의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한국형 레몬법은 소비자가 신차 구매 후 1년 이내, 2만 km 미만을 주행했을 때 같은 문제로 중대한 결함이 2회, 일반 결함이 3회 이상 발생하면 교환 및 환불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자동차 업체가 계약서에 자발적으로 이를 반영하지 않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 27만 대를 판매한 수입차 업체의 약 40%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18일 자동차 업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 따르면 국내외 완성차 업체 21개사 중 차량 교환·환불 조항을 매매 계약서에 반영한 곳은 10개사로 조사됐다. 5개사는 레몬법 도입을 결정했지만 아직 계약서에 반영하지 않았다. 11일 기준 레몬법을 수용하지 않은 자동차 업체는 포드코리아와 한불모터스(푸조 판매), 포르쉐코리아 등 6곳으로 모두 수입차 업계다.
올 1월 시행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차량의 교환·환불은 결함이 있을 경우 판매계약서에 교환 및 환불 조항을 넣어야만 가능하도록 했다. 또 계약서에 이를 포함하지 않아 레몬법이 적용되지 않으면 교환·환불 조치를 하지 않아도 완성차 업체를 처벌할 수 없다.
당초 한국형 레몬법에는 완성차 업체가 교환·환불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하는 등의 처벌 조항이 담겼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런 내용이 빠진 채 2017년 9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개정 논의에 참여했던 국회 관계자는 “교환·환불 조치를 의무화하거나 처벌 조항까지 담는 것을 두고 자동차 업계의 반발이 거셌던 탓에 국회와 정부가 중재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 보호정책이 강력한 미국에선 이미 1975년에 레몬법(매그너슨-모스 보증법)이 도입되면서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자동차가 동일한 하자로 두 번 이상 수리해야 하는 결함이 발생하면 교환 및 환불하게 강제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이미 비슷한 법이 시행 중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비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한국소비자원의 분쟁 조정을 통해 소비자가 국산 또는 수입 자동차를 완전히 교환·환불한 사례는 신차에서 누수 현상이 발생한 사례 등 연평균 50건 안팎에 불과하다. 지난 10여 년간 수입차 판매가 급증했지만 그동안 소비자는 자동차를 샀을 때 문제가 생겨도 교환·환불을 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혀 있던 셈이다.
소비자단체들은 한국형 레몬법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국회와 국토교통부가 관련 법령과 시행규칙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팀장은 “완성차 업체의 동의가 없어도 교환·환불 중재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국토부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등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완성차 업계 일각에선 기존 한국형 레몬법에 강제 조항이나 처벌 규정이 추가로 생기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형 레몬법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교환·환불을 기대하고 소비자가 차량을 부실하게 관리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진환 국토부 자동차정책과장은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된 지 이제 100일 남짓 지났기 때문에 앞으로 완성차 업체의 교환·환불 조항 적용 현황을 파악하면서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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