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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분수대] 기억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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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에는 관광객들의 ‘포토 스팟’이 있다. 포앵 제로(Point zéro des routes de France)라 불리는 방위가 적힌 원형의 동판인데 프랑스 모든 도로의 기준점이 되는 ‘도로원표’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는 관광객들은 여기에서 쌍둥이 종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포앵 제로를 밟으면 파리에 돌아온다는 속설도 있다.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앞에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전각이 하나 있다. 한자로 ‘기념비전(紀念碑殿)’이라 적혀있는데 1902년 고종의 즉위 40돌을 기념해 만든 ‘고종어극사십년칭경기념비’를 보호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그 앞에는 파리의 포앵 제로 같은 도로원표가 있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네거리 한가운데에 설치했다가 1935년 도로를 정비하면서 기념비전 안으로 옮겼다. 전국 18개 도시까지의 거리를 음각으로 새겨놨다.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포앵 제로와 달리 도로원표는 한국인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자리를 한번 옮겼고, 그나마 1997년 새 도로원표를 만들어 대각선 맞은편(동화면세점 앞) 세종로 파출소 앞으로 옮겼다. 물론 이 도로원표를 아는 이도 많지 않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세계인은 슬픔에 빠졌다. 대혁명 시기 종교의 힘이 약해지면서 파괴 직전에 있던 대성당은 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많은 이들의 추억이 더해져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장소가 됐다. 근대의 상징인 도로원표와 더불어 ‘이야기를 가진 공간’이 된 덕분이다.

기념비전 앞 도로원표가 잊힌 건, 스스로 이루지 못한 근대화와 사라진 왕조의 역사가 더해지면서다. 재개발·재건축의 광풍 속에 끊임없이 잊히는 서울과 영원히 기억되는 파리의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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