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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매경데스크] 국익 vs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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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조선 왕조와 에도 막부의 운명을 가른 것은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이다.

메이지 유신의 주체 세력은 사쓰마(현 가고시마), 조슈(현 야마구치)의 하급 무사(사무라이)들이다. 서양 열강에 맞서기 위해 부국강병 기치를 들었던 그들은 막부의 '쇼군' 대신에 '국왕'을 옹립했고, 봉건적 특권이 난무했던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을 부쉈다.

토지 개혁, 신교육과 상공업 기반을 닦았고 신분제도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속했던 사무라이 계급도 사라졌다. 보신전쟁, 세이난전쟁과 같은 일부 사무라이들의 저항도 있었다. 하지만 '진영' 논리보다는 '국익'을 앞세웠기 때문에 메이지유신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일본은 서구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 강국으로 발돋움했다(같은 시대 조선의 위정자들과 양반 사대부가 뭘 했는지는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일리노이주 변호사 출신으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이 된 에이브러햄 링컨(재임 1861~1865).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그가 전시 국방장관에 임명한 사람은 놀랍게도 그의 정적(政敵)이던 에드윈 스탠턴이다. 스탠턴은 링컨의 외모를 겨냥해 "고릴라가 보고 싶으면 일리노이주에 가라. 그곳에는 링컨이라는 고릴라가 있다"고 폄하를 일삼았다. 링컨은 공화당, 스탠턴은 민주당으로 서로 몸담고 있던 정당도 달랐다. 하지만 링컨은 남북전쟁을 헤쳐나갈 적임자로 자신의 정적을 선택했다. 스탠턴은 특유의 지략과 엄격한 관리를 앞세워 남북전쟁 초기 열세에 있던 북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아메리카합중국이 탄생하며 21세기 글로벌 최강국의 기반이 마련됐다. 링컨이 스탠턴을 발탁한 것은 진영 논리보다 국익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링컨은 지금도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 1위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에선 진영 논리냐, 국익 우선이냐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집권세력은 "우리는 국익만 바라본다"고 강변한다. 과거사를 재조명하는 것도, 사법 개혁을 주창하는 것도 모두 같은 논리로 자신들을 합리화한다. 야당은 사사건건 "집권세력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적폐 청산'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면 자신들도 적폐가 될 거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야당 측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촛불 혁명에 의해 탄생한 현 정부는 과거 정권과 다를 줄 알았는데 별반 다른 것이 없다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필자도 최근 정부의 인사(人事)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됐다.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한다면 그건 국익보다는 진영을 앞세운 인사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집권 세력에 묻고 싶다. '증권투자 부업'으로 화제가 됐던 이미선 헌법재판관을 밀어붙인 것은 국익을 위해서인가, 진영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내친김에 몇 가지 더 물어보겠다.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에 집착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인가, 진영을 위해서인가. 한일관계 회복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인가, 진영을 위해서인가. 여당 대표가 '20년 집권론'을 내놓은 것은 국익을 위해서인가, 진영을 위해서인가. 민노총의 촛불 청구서에 끌려다니는 모습은 굳이 뭐를 위해서인지 물어보지 않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신문의 날 행사에 참석해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진영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다고 자신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면 정부도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힘들다면 비슷한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도저히 못 하겠다면 "국가를 말아먹은 반대편 진영을 완전히 청산하려면 우리도 진영 논리를 앞세울 수밖에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된다. 우리 국민들은 절대 우매하지 않다. 그리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국익이 먼저인지, 진영이 먼저인지.

[채수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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