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1 (월)

[매경춘추] 정치과잉의 시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대 초반에 대학에 들어온 586세대여서 그런지 오랫동안 이념과잉, 정치과잉 상태를 탈피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대기업에 취직한다거나, 창업을 해서 성공한 기업인이 되겠다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정치학과 행정학 전공자로서 연구원에 입사한 뒤에도 경제나 경영보다는 정책과 제도 연구가 주 업무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일대 전환기가 왔다. 미국의 잭 웰치 전 GE 회장 인터뷰와 저서를 보고, 기업과 경영 및 리더십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치나 행정이 '나눠 먹는 일'이라면, 경제와 경영은 '나눠 먹는 것을 더 크게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치와 행정이 '가치의 권위적 배분'에 초점을 둔다면, 경제와 경영은 '가치 창출과 성장'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름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해보고자 다니던 연구원을 그만두고 기업행을 택했다.

기업으로 옮긴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 갑자기 '을'이 되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정치나 행정이 기업과 기업인에게 휘두르는 권력의 무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방향성에 대해서만큼은 확신을 가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와 행정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경제와 경영이 우리 사회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 같은 확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가 항상 전진하는 것은 아니고 가끔은 퇴행적일 때도 있는 것 같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우리는 또다시 정치과잉 시대를 겪고 있다. 이익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정부가 아니라 국회로 달려간다. 법령의 제정과 개정은 물론이고 경제정책의 방향도 사실상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다. 경제나 기업 경영에 대한 정치와 행정의 개입도 늘었다. 때때로 경제나 기업은 정치와 행정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정치과잉은 민간 경제와 기업을 위축시키고 성장을 약화시킨다. 정치과잉이야말로 선진화된 민주사회에서 청산돼야 할 적폐다. 정치의 가치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민간 경제와 기업을 키우는 데 있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