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과거사 진상조사단원 박준영 변호사 인터뷰
윤지오씨 증언 근거있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김학의 동영상 공개도 납득하기 어려워"
대통령, 총리 발언에 "檢·警모두 눈치봐"
올해 3월까지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했던 박준영 변호사의 모습. [중앙포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지난 3월까지 활동하며 김 전 차관의 ‘별장 성접대·성폭력’ 사건을 조사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1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이끌었던 인권변호사인 박 변호사는 "김학의·장자연 사건이 여론과 각자의 이해관계에 휩쓸리며 과장과 왜곡이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가 두 사건을 들여다보며 원래 찾고자했던 의미조차 잃어버릴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검증'이란 제목의 글을 남겼다. 한 언론이 '김학의 별장 동영상'을 공개한 것에 대해 "특수강간 혐의의 직접 증거로 볼 수 없고 공개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고 장자연 씨를 둘러싼 성 접대 강요 사건 증언자인 동료 배우 윤지오 씨가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신의 책 '13번째 증언' 북 콘서트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윤씨는 지난달 28일 KBS1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해 장씨가 "유리컵으로 한 잔도 안 마셨는데 의식이 아예 없는 상태를 여러 번 목격했다"며 당시 술이 아닌 약물에 취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박 변호사는 전화통화에선 글보다 조금 더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통화 중 계속해 '여론'과 '주류'라는 단어를 반복해 말했다. 잘못된 사실 관계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지만 "여론에 휩쓸려 이를 반박하는 목소리들은 들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김학의 동영상 공개를 재차 비판했고, 김학의 사건에서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연관이 있는 관련자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씨와 지인이란 이유만으로 그들이 '별장 성접대'와 연루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모습. [중앙포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장씨가 약물에 취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점에 대해 "이 발언을 두고 언론에서 특수강간, 공소시효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너무 나간 것 같다"며 "윤씨의 말 한마디에 당시 동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강간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발언의 근거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 말 역시 오늘 글로 남기려다 지웠다며 "김학의·장자연 사건의 경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관계를 따져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실체를 넘어서 과장이나 왜곡이 들어가선 안된다"며 "대통령이 수사를 지휘하고 총리까지 나서는 상황에서 검찰과 경찰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박준영 변호사 14일 페이스북 글 전문
■
<검증>
형제복지원 사건, 피디수첩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조사를 마친 후 재배당된 김학의 사건 조사를 맡아 사건기록을 봤습니다. 조사팀을 나올 때까지 기록을 꼼꼼히 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제 게으름을 탓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임이 확인되면, ‘성폭력(특수강간)’이 성립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학의의 특수강간을 주장하는 경찰도 동영상은 ‘범죄의 직접 증거’라기보다는 ‘김학의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당시 검찰 수사팀이 동영상 속 인물을 특정하지 않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검찰이 동영상 속 인물을 특정하지 않은 게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크게 확대시켰습니다.
이제는 검찰수사단이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동영상 속 인물에 대한 판단, 이전 수사과정에서 특정하여 공개하지 못한 이유 등을 밝혀야 할 것과 같고 그래야 국민이 갖고 있는 의혹이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동영상 공개는 신중했어야 했습니다. 동영상 속 인물이 누구인지 판단하여 공개하는 것을 넘어 동영상을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했습니다. 두 남녀의 성행위 영상입니다. 범죄 혐의와의 관련성이 부족하고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을 지도 불분명한 영상입니다.
윤지오 씨가, 장자연 씨가 술이 아닌 다른 약물에 취한 채 강요를 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아는데, 이 진술이 언제 비로소 나왔는지 그리고 어떤 경위로 나왔는지, 이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이 존재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특수강간죄를 논하고 공소시효 연장 등 특례조항 신설을 이야기하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주장입니다.
윤지오 씨의 진술은 검증도 필요 없는 증언이 아닙니다. 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이 검증은 도대체 누가 하고 있나요. 이런 분위기에서는 할 수 있는 검증 그리고 검증의 결과 발표도 한계가 있는 겁니다.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숙소를 마련해주고 경호팀을 붙여주는 등의 국가 예산 지출로 이어졌습니다. 도대체 윤지오 씨가 주장하는 ‘가해의 실체’는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검증하고 때론 의문도 제기합시다. 그리고 신중히 판단합시다. 오해는 쉽고 증명은 어려운 법입니다.
윤지오 씨가 법정 증언한 사건에서 그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삼는 건 아닙니다. 그 사건 외 여러 폭로의 근거를 살펴보자는 겁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디수첩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조사를 마친 후 재배당된 김학의 사건 조사를 맡아 사건기록을 봤습니다. 조사팀을 나올 때까지 기록을 꼼꼼히 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제 게으름을 탓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에 대중이나 언론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장자연 사건 등 다른 사건을 조사하는 단원들과도 고민과 고충을 나누면서 주워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이걸 풍문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임이 확인되면, ‘성폭력(특수강간)’이 성립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학의의 특수강간을 주장하는 경찰도 동영상은 ‘범죄의 직접 증거’라기보다는 ‘김학의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당시 검찰 수사팀이 동영상 속 인물을 특정하지 않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검찰이 동영상 속 인물을 특정하지 않은 게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크게 확대시켰습니다.
이제는 검찰수사단이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동영상 속 인물에 대한 판단, 이전 수사과정에서 특정하여 공개하지 못한 이유 등을 밝혀야 할 것과 같고 그래야 국민이 갖고 있는 의혹이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동영상 공개는 신중했어야 했습니다. 동영상 속 인물이 누구인지 판단하여 공개하는 것을 넘어 동영상을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했습니다. 두 남녀의 성행위 영상입니다. 범죄 혐의와의 관련성이 부족하고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을 지도 불분명한 영상입니다.
윤지오 씨가, 장자연 씨가 술이 아닌 다른 약물에 취한 채 강요를 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아는데, 이 진술이 언제 비로소 나왔는지 그리고 어떤 경위로 나왔는지, 이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이 존재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특수강간죄를 논하고 공소시효 연장 등 특례조항 신설을 이야기하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주장입니다.
윤지오 씨의 진술은 검증도 필요 없는 증언이 아닙니다. 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이 검증은 도대체 누가 하고 있나요. 이런 분위기에서는 할 수 있는 검증 그리고 검증의 결과 발표도 한계가 있는 겁니다.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숙소를 마련해주고 경호팀을 붙여주는 등의 국가 예산 지출로 이어졌습니다. 도대체 윤지오 씨가 주장하는 ‘가해의 실체’는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검증하고 때론 의문도 제기합시다. 그리고 신중히 판단합시다. 오해는 쉽고 증명은 어려운 법입니다.
윤지오 씨가 법정 증언한 사건에서 그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삼는 건 아닙니다. 그 사건 외 여러 폭로의 근거를 살펴보자는 겁니다.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