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정준영 낳는 '몰카 돌려보기'' 범죄
대학원생 윤모(27)씨는 지난해 군 동기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 알림을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한 동기가 술에 취해 기대 있는 여성의 상반신 사진을 올렸다. 잠을 자듯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봐서 동의 하에 찍은 사진으로 보이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다른 이들의 장난 섞인 반응이었다. ‘ㅋㅋ’라는 웃음 표시나 ‘몸매가 좋다’ ‘계 탔다’는 등의 글이 줄줄이 달렸다. 윤씨는 “최근 버닝썬 사태로 정준영 등 연예인들의 몰카 논란이 불거졌는데, 남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 연희동에 사는 이모(30)씨도 지난 3월 비슷한 일로 언성을 높였다. 겨울 휴가에 간 이씨의 친구가 단톡방에 비키니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이 나온 사진을 올려서다. 이후 이 여성의 외모나 몸매를 품평하는 대화가 이어지자 참다못한 이씨가 문제를 제기했다. 이씨는 “예전 같으면 못 본 척했겠지만 문제가 될 것 같아 ‘몰카라면 범죄다’는 글을 올렸다”며 “친구는 ‘해변 풍경을 찍다가 우연히 찍힌 것’이라고 해명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있다’ 혹은 ‘심한 사진도 아닌데 친구끼리 왜 그러느냐’는 식으로 반응이 갈렸다”고 전했다.
“장난과 범죄의 경계, 안전장치가 없다”
미국 연방수사국(FBI)는 장난과 범죄의 경계를 넘나들며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각종 성 관련 범죄를 섹스링 범죄로 규정한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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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젊은 층들 사이에서 섹스링이 ‘놀이’처럼 번지는 건 이들이 각종 스마트폰 기기와 실시간 소통에 익숙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과거엔 테이블에 모여 음담패설을 하는 수준에서 일종의 섹스링이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스마트폰 버튼만 누르면 영상과 사진이 전송되고 반응도 즉각 나오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팀장은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할 새도 없이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섹스링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라며 “장난 수준을 넘어 형사처벌 혹은 민사소송 대상의 범죄로 넘어가더라도 단톡방 등 내부에선 이를 제어할 안전장치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단톡방 성희롱부터, 길거리 몸매 품평까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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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들이 즐겨 찾는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헌팅 방송’도 수위에 따라 섹스링에 해당할 수 있다. BJ들이 이태원, 홍대 등에서 길을 가는 이성에게 말을 걸면 시청자들이 댓글창에 외모를 평가하는 식인데, 일부 성희롱 댓글들이 달려 논란이 됐다. 인천에 사는 김아람(28)씨는 “촬영물 등을 공유하거나 이성을 희롱하면서도 잘못된 일이라는 죄책감이 없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가수 정준영이 지난 3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성관계 몰카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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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음지에서 벌어지는 ‘위험한 장난’처럼 여겨졌던 섹스링 범죄에 대해 엄단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주로 인터넷, SNS 공간에서 마치 유희처럼 이뤄지는 성 관련 범죄로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가 늘고 있다”며 “장난이라는 해명과 관계없이 범죄가 성립되면 관련법에 따라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손국희ㆍ이태윤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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