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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의회민주주의 발상지 영국...브렉시트 `결정장애` 빠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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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199] 흔히들 영국을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라고 한다. 국민을 대표해 선출된 의원들이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표결하는 영국의 의회정치는 선진 민주주의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영국인들은 의회민주주의의 도입이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발명이라고 자부해왔으며 실제 일본, 캐나다 등 많은 국가들이 영국에서 기원한 이 제도를 채택했다.

그러나 막상 영국식 민주주의의 실체는 모호하다. 우선 영국에는 정치제도를 규정하는 성문 헌법이 없다. 영국에 성문 헌법이 없는 이유는 19세기 시민혁명에 따라 제도 개혁 바람이 불었던 유럽 대륙과 달리 오랫동안 안정적인 정치 상황을 유지했던 탓이다. 민중 봉기와 전쟁 끝에 근대적인 의미의 헌법을 마련했던 프랑스나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영국은 오랜 의회 정치의 전통에 따라 얼마든지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법학자이자 런던 경제대학 교수이기도 했던 존 그리피스는 "영국의 헌법이란 일어난 일 그 자체이다(British constitution is what happens)"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오히려 영국인들은 법을 글로 남겨 놓았다가 권력자들이 조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의회정치의 전통이 위협받는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영국 의회는 실용적이고 유연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는 동시에 의회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결정이 무기한 연기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이러한 단점이 극명히 드러난 사례가 바로 최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를 둘러싼 정치 혼란이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EU와 협상을 통해 마련한 합의안은 세 번의 승인투표를 거쳤지만 하원의 비준을 얻는 데 끝내 실패했다. 하원에서 브렉시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의향투표도 두 차례 실시됐지만 제안된 대안은 모두 부결됐다. 영국은 여전히 언제, 어떻게 브렉시트를 진행할 것인지 그 어떤 것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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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원에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3차 승인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제공=영국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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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국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이것이 과연 우리가 부러워했던 선진 정치가 맞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그러나 영국 정치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면 일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영국은 의회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상 영국의 정치 제도는 '민주주의'보다는 '의회정치'에 방점을 찍어 발전했다. 그 핵심은 권력자의 자의적인 판단을 견제하는 의회의 권한이다.

영국 대의 민주주의의 역사는 왕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귀족계층의 오랜 투쟁에 그 뿌리를 둔다. 보통 1689년 명예혁명을 통해 공동 왕위에 오른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 부부가 의회제정법인 권리장전에 서명한 것을 영국 입헌군주제의 시작으로 보지만 사실 대의기구로서의 의회는 그보다 400여 년 앞선 1265년 처음 등장한다. 당시 영국 국왕인 헨리 3세의 과도한 과세정책과 사치에 반발한 귀족들은 1258년 그에게 왕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옥스퍼드 조항'을 승인하도록 종용한다. 이 조항은 귀족들로 구성된 자문기구를 두어 왕의 통치행위를 감독하고 일 년에 세 번 의회를 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왕정 개혁을 주도한 귀족 시몽 드 몽포르는 1265년 귀족과 성직자뿐 아니라 각 시에서 막대한 토지를 보유한 자유민이 선출한 대의원도 의회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로써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영국 의회 정치의 초기 단계에는 귀족 등 매우 제한된 상류층만이 의회에 대의원을 보낼 수 있었다. 또 지역 유지를 대표해 의회에 나온 기사나 대의원은 귀족들과 별도의 공간에서 회의를 진행했는데 이는 오늘날 상원과 하원을 나누는 양원제의 기원이 됐다. 1832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도시 중산층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을 때도 전체 인구 대비 유권자 비율은 5.9%에 불과했다. 이후 네 차례 더 선거법을 개정한 끝에 1928년이 되어서야 모든 성인 남녀가 투표권을 가지게 됐다. 영국 의회정치는 750년에 걸친 오랜 전통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야 민주주의를 완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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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 성립 700주년을 기념해 1965년 발행된 우표 /제공=스탬프익스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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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국 의회는 여전히 귀족을 대표하는 '귀족원(House of Lords·상원)'과 일반시민을 대표하는 '평민원(House of Commons·하원)'으로 구성된다. 의회를 부르는 명칭에 신분제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영국 상원은 선출직이 아닌 세습 혹은 임명직으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공작, 후작 등 작위를 물려받은 귀족들과 성공회 성직자들도 포함된다. 1999년 노동당 정부가 추진한 상원개혁법에 따라 대다수 세습 귀족은 의원직을 박탈당했지만 여전히 세습 귀족을 의원으로 임명하는 관행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영국 하원에서 브렉시트 향방을 둘러싼 의향투표가 한창일 때 상원에서는 세습 귀족이 새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날 1920년대 영국 정치인이었던 오스왈드 어날드 모슬리 남작의 증손주인 대니얼 니콜라스 모슬리 남작이 귀족원 의원으로 합류했다. 입법권에 관해서는 선출직으로 구성된 하원이 우위를 가지지만 상원도 법안을 수정하거나 법안 통과를 지연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입법 과정에 개입하게 된다.

1876년부터는 대법관으로 임명된 판사가 법률귀족이라는 직위로 상원 의원 자격을 겸하도록 해 의회에 사법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에 2009년 10월 독립된 대법원이 설립되기 전까지 상원 법률위원회가 영국 대법원의 기능을 수행했다. 영국에서 온전한 의미의 삼권분립이 성립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셈이다.

지난 1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브렉시트가 영국 헌법을 시험에 들게 했다"고 보도했다. FT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방식은 천천히,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변화를 추구해온 영국 헌법에 어긋난다고 분석했다. EU를 탈퇴하라는 국민투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EU 단일시장이나 관세 동맹에 어떠한 접근권도 없는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형태의 브렉시트를 추진할 권한이 부여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국의 의회정치는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대중의 뜻에 마주하면서 도전에 직면했다. 너른 바다를 항해해온 영국 의회라는 배에 국민투표라는 무거운 닻이 내린 것이다. 영국이 정치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브렉시트라는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문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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