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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일회용품 사용과 퇴출

[TF현장]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금지...고객도 마트도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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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된 2일 서울역 한 대형마트에 '속 비닐봉투' 사용 자제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 마트는 흙 묻은 감자는 아예 포장해 판매하고 있었다. /서울역=신지훈 기자


정부, 1일부터 일회용품 단속 나서...구체적 가이드라인 부족 '현장 혼란' 가중

[더팩트 | 서울역=신지훈 기자] #1 고객: "비린내 날 텐데 어떻게 들고 가라고요, 그러지 말고 비닐봉투 한 장 주세요." 마트직원: "죄송합니다 손님, 대신 랩으로 한 번 더 감아서 드릴께요."

#2 마트직원: "손님, 비닐봉투 그렇게 막 뜯어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고객: "아니 그럼 어디에 담아가라고 그래요? 그동안 잘만 가지고 갔는데 왜 그러시는 거에요?"

비닐봉투 전면금지 시행 이틀째인 2일, 서울역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여기저기서 손님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특히 수산물 코너에서 더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수산물 코너에서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 A씨는 "난처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생선이나 어패류는 물기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비린내도 나는데 비닐봉투를 제공하지 못해 고객들의 불만이 많다. 그저 랩이나 냅킨으로 한 번 더 감아 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마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수서역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의 과일‧야채 코너에서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 B씨는 롤 형태로 놓여있는 속 비닐을 여러 장 뜯어가는 고객들을 말리느라 힘들다고 했다. B씨는 "장보러 나오신 분들이 속 비닐을 뜯어갔다가 계산 후 물건들을 담아가곤 한다"며 "그러나 이제는 봉투를 제공할 수 없어 가져가시는 고객들을 말리고 있는데, 그동안 괜찮다가 왜 이제 와서 그러냐며 불만들이 많으시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1일부터 일회용 비닐봉투를 비롯한 일회용품 단속에 들어갔다. 비닐봉투 제공 및 판매가 전면 금지되며 서울시도 구청‧시민단체와 합동으로 집중단속에 나섰다. 대형마트를 비롯해 슈퍼마켓, 복합상점가 등은 일회용 비닐을 제공하다 적발되면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한다.

시행 이틀째인 이날 구매한 상품을 담기 위해 박스 포장을 하는 곳에서도 점원과 손님 간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마트 안에서 몰래 속 비닐을 가져 나와 우유 등 낱개 구매품을 담는 손님을 점원이 제지하는 것. 비닐봉투 사용이 어려워지자 박스 포장을 하고 있는 손님들도 많았다. 이곳에서 박스를 정리하던 직원은 "비닐봉투 제공이 금지되자 박스를 찾는 고객들이 평소보다 배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마트를 찾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준비가 부족했던 게 아니냐며 아쉬워했다. 제도가 시행 된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사용해도 되고, 안 되는 비닐봉투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의견도 있었다.

주부 신숙경(56)씨는 "비닐봉투 제공이 안 되는 줄 알았으면 장바구니를 따로 준비해왔을 것"이라며 "아끼려고 마트 왔다가 돈 주고 장바구니를 구매하게 돼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든다"고 했다. 주부 김지혜(42)씨는 "환경을 위해 이런 제도를 도입한 것은 좋다는 생각이지만, 정부의 준비가 미흡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매일 같이 마트를 왔어도 시행한다는 안내 문구를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주부 이경옥(58)씨는 "속 비닐은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과자 코너에는 과자를 담아가라고 비닐이 쌓여있더라. 대체 사용해도 되는 비닐과 안 되는 비닐은 무엇인지 정확한 기준도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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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 코너에서는 비닐봉투에 생선을 담아갈 수 없다며 항의하는 손님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마트 관계자는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되며 박스 포장을 해가는 고객들이 평소보다 두 배는 늘어났다고 말했다. /서울역=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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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도 불만과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 전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비닐봉투 대체재를 마련했어야 하는데 이런 준비 없이 단속하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한국마트협회 관계자는 2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이 너무 부족하다"며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가이드라인도 많으며, 지자체별로 단속 내용도 달라 협회 회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많은 상황이다.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예를 들어 한 지자체는 생선은 물이 흐를 수 있어 속 비닐 사용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며, ‘절대 안된다’고 말하는 지자체도 있다. 도대체 계도기간 동안 현장의 혼란을 방지할 매뉴얼을 만들지 않고 무엇을 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도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어제와 오늘 양일간 지켜본 결과, 속 비닐 사용은 줄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랩, 스티로폼 포장재 등 다른 일회용품 사용량이 늘었다"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시행한 제도가 너무 대책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마트 관계자는 "고객이 담아갈 비닐봉투 사용은 단속하면서 대기업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완제품은 전부 비닐포장이 돼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선후가 뒤바뀐 제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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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의 비닐봉투 사용은 단속하고 있는 반면, 행사 매대에서는 오히려 비닐봉투를 두고 빵 담아가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서역=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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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환경부는 1일부터 전국 대형마트 2000여 곳과 매장 크기 165㎡ 이상의 슈퍼마켓 1만1000여 곳에서 비닐봉투를 제공할 시 횟수에 따라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매장들은 일회용 비닐봉투 대신 종량제 봉투, 장바구니, 종이봉투 등을 사용해야 한다. 마트뿐 아니라 백화점, 쇼핑몰, 복합 상점가 또한 일회용 봉투를 쓰면 안 된다.

이는 지난 1월1일부터 시행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것으로 환경부는 1월부터 3월까지 석 달간 계도기간을 운영했고 이달 1일부터 단속에 들어갔다. 현장 단속은 마트가 위치한 시‧군‧구에서 담당한다. 4월 한 달 동안은 집중 단속 기간이라 지속적으로 단속할 계획이다.

생선이나 고기, 두부 등 수분을 포함하거나 액체가 샐 수 있는 제품은 예외적으로 비닐봉투가 허용된다. 아이스크림처럼 상온에서 녹는 제품과 흙이 묻은 채소들도 규제 적용에서 제외된다.

환경부는 이번 조치로 1년에 총 22억2800만 장의 비닐봉투 사용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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