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가 편지를 보낸 사람은 계엄군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아널드 피터슨 목사의 부인 바버라 피터슨 여사와 광주 참상을 사진과 글로 기록해 해외 언론에 기고한 고 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의 부인 마사 헌틀리 여사다.
김 여사는 편지에서 “광주 시민의 의로운 항거를 ‘북한특수군이 주도한 게릴라전’으로 묘사한 후안무치한 거짓말에 대해 목격자로서 두 분의 뜨거운 증언에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주휴스턴 대한민국 총영사관 댈러스출장소 관계자가 지난 29일(현지시간) 바버라 피터슨 여사에게 김정숙 여사의 편지와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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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광주에 머물렀던 피터슨·헌틀리 여사는 지난 2월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부인하는 것과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자유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5·18 망언’을 비판했다.
김 여사는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라는 문구를 인용한 뒤 “여전히 장례식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역사의 진실을 지우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의에 항거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도시 광주의 영원한 증인이 되어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민주주의를 위한 광주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래는 김 여사의 편지 전문.
바바라 피터슨 여사님과 마사 헌틀리 여사님께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광주 5월을 그린 소설 <소년이 온다>(작가 한강)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 해 5월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장례식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역사의 진실을 지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주 시민의 의로운 항거를 ‘북한특수군이 주도한 게릴라전’으로 묘사한 후안무치한 거짓말에 대해 목격자로서 두 분의 뜨거운 증언에 감사드립니다.
그 해 5월 두 분은 광주에 있었고, 광주를 목격했고, 누구보다 더 광주의 참혹한 현실을 아파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쟁터와 같았던 당시의 광주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떠날 수 있었는데도 끝까지 광주에 남아 광주 시민들과 함께 하셨던 두 분 가족의 의로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도로는 막히고 통신은 끊기고 신문과 방송은 가위질당하던 그때, 철저히 고립되고 왜곡되었던 광주의 의로운 항거와 광주 시민들의 인간애를 전 세계에 알리고 헬기 사격을 증언한 피터슨 목사님과 헌틀리 목사님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불의와 폭력 앞에서 분노하고 행동했던 두 분 가족의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사랑했던 광주가 이제는 정의의 이름이 됐다” “그때 5월에 죽은 사람들, 그때 싸운 사람들을 누구도 모독할 수 없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광주의 진실’을 말씀해 오셨지요.
거짓은 참을 가릴 수 없음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스스로 만든 역사를 통해 증명했습니다.
불의에 항거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도시 광주의 영원한 증인이 되어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민주주의를 위한 광주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늘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2019년 3월 6일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
김정숙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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