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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최저임금이 불러들인 기계, 김밥집도 파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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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계, 인건비 부담 늘자 무인화-기계화 도입 확산

동아일보

25일 서울 영등포역 인근의 얌샘김밥 매장에서 직원이 ‘라이스 시트기’를 활용해 1, 2초 만에 김 위에 밥을 고르게 펴고 있다. 김밥 프랜차이즈업계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김밥 절단기’ ‘채소 절단기’ 등 김밥제조기계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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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6시경 서울 영등포역 인근의 얌샘김밥 매장. 저녁 식사 시간이라 밀려드는 손님으로 분주했지만 김밥 담당 직원은 ‘김밥제조기계’를 활용해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일명 ‘라이스 시트기’란 기계에 김을 펼쳐놓고 버튼을 누르자 일정한 양의 밥이 1, 2초 만에 고르게 펴졌다. ‘채소 절단기’로 미리 손질해놓은 당근 등 각종 재료를 올리고 손으로 돌돌 만 뒤 ‘김밥절단기’ 버튼을 누르자 김밥이 수직 상승하며 꼭대기 지점에 설치된 칼날에 의해 바로 10개로 잘렸다.

최근 2년간 29.1%나 오른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온 김밥집 풍경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단체 주문이 많은 일부 매장에서나 사용했던 김밥 절단기 등의 기계가 주요 김밥 프랜차이즈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전국에 170여 개 직영·가맹점을 운영 중인 얌샘김밥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각 매장에 김밥제조기계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 30여 개 매장에 김밥제조기계가 도입된 상태다. 얌샘김밥은 올해 말까지 추가로 60여 개 매장에 김밥제조기계를 들여놓을 계획이다.

얌샘김밥 관계자는 “김밥제조기계 도입은 급격한 인건비 인상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며 “무인 주문·결제기와 김밥제조기계를 모두 도입하면 2명가량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얌샘김밥 분석에 따르면 무인 주문·결제기(키오스크)와 김밥제조기계 3종(라이스 시트기, 채소 절단기, 김밥 절단기) 도입 시 최대 1.5명에서 2명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15∼18평 규모의 김밥·분식 매장에는 최소 3∼5명의 직원이 필요한데 키오스크로 0.5명, 김밥제조기계 3종으로 최소 1명 이상의 인력을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계를 모두 도입하면 2000만 원 안팎이 든다. 올해 최저임금 8350원을 기준으로 하면 한 사람의 인건비가 월 250만 원으로 연 3000만 원가량(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 기준) 된다. 서울 종로와 경기도에서 김밥제조기계를 도입해 두 곳의 김밥집을 운영 중인 한 점주는 “김밥이 하루 130줄가량 나가는데 100줄만 나가도 칼질을 900번은 해야 한다”면서 “김밥기계가 없을 땐 3명이서 1시간에 60줄 정도 쌌는데 기계를 도입한 후 1시간에 130줄까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김밥은 손으로 만들어야 맛있다’는 인식보다 ‘김밥 제조에 필요한 노동력을 줄여야 한다’는 절박함이 커지면서 다른 김밥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김밥제조기계 도입을 준비 중이다. 전국에 매장이 425개인 김가네는 올해 라이스 시트기를 처음 선보이며 가맹점주들과 적용 여부를 협의하고 있다. 15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인 바르다김선생도 라이스 시트기와 김밥 절단기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외식산업경기전망지수는 64.2로 최근 3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밥 및 분식 전문점 수는 4만4466곳에 달한다. 인건비가 힘겨운 곳을 중심으로 기계화가 빠르게 진행될 공산이 커 보인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김밥집의 김밥제조기계 도입은 속도 조절에 실패한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 일자리부터 압박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면서 “각종 비용을 줄여야 하는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어서 향후 외식업, 편의점 등으로 기계화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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