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안 통과가 사퇴 조건, 강경파 "이젠 찬성"
브렉시트 혼란 결국 보수당 권력 다툼이었나
연정파트너 DUP 반대해 통과 여전히 불투명
의원들 모든 방안 거부해 "어쩌자는 거냐"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 합의안이 하원에서 통과하면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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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의 사퇴 배수진에도 불구하고 합의안이 하원을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존 버커우 하원의장이 같은 합의안을 또 표결에 부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한 데다, 연정 파트너로 과반 확보에 필요한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이 합의안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서다.
브렉시트 혼란상은 메이 총리의 독선적 추진도 원인이었지만, 근본적으로 집권 보수당 내 권력 차지하기 싸움이 원천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영국 하원은 정부 합의안에 대한 대안으로 8개 방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모두 부결됐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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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영국 하원은 이날 정부 합의안을 대체할 수 있는 브렉시트 대안 8개를 놓고 표결을 했다. 관세동맹 잔류, 제2 국민투표, 노 딜 브렉시트, 브렉시트 취소, 노르웨이 모델 등 모든 안이 부결됐다. 표결 결과가 발표되자 하원은 의원들의 아우성으로 넘쳐났다. 영국 정치권이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세계가 의아해할 지경이다.
메이 총리는 이날 보수당 의원 300명가량이 모인 자리에서 브렉시트 합의안 처리를 조건으로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브렉시트 다음 단계 협상에서 새로운 접근과 새 리더십을 원하는 당 분위기를 전해 들었다며 이를 가로막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라와 당을 위한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생각보다 일찍 자리를 떠날 준비가 돼 있다"며 “여기 있는 의원 모두가 합의안을 지지한다면 질서 있게 EU를 떠나는 역사적 의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이 통과되든 부결되든 메이는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영국 언론들은 전망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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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총리는 이미 두 차례 부결된 합의안을 28일이나 29일 하원에서 표결에 부쳐 통과시키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브렉시트 대안 8개를 놓고 하원이 ‘끝장 투표'에 들어간 이 날 버커우 하원의장은 거듭 합의안에 변화가 없으면 투표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설사 표결에 부쳐 보수당 의원들이 모두 찬성해도 연정 파트너인 DUP의 협조가 없으면 통과는 장담할 수 없는데, DUP 측은 이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차기 총리를 노리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은 메이가 사퇴 의사를 밝히자 웃으며 "합의안을 지지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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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의 사퇴 배수진은 사사건건 반대만 해온 보수당 브렉시트 강경파 의원들만 기분 좋게 만들었다. 차기 총리를 노리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은 메이의 사퇴 발표 직후 만면에 웃음을 지은 채 “합의안을 지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 강경파 모임인 유럽연구단체’(ERG)의 리더 제이콥 리스-모그 의원도 “DUP가 기권해주면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DUP가 합의안을 지지해야만 자신도 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메이의 사퇴 입장 발표를 두고 "브렉시트 혼란은 결국 보수당 내부가 문제였다"고 꼬집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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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는 브렉시트 정치 도박을 건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의 사임으로 총리직에 올랐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유별난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보수당 내에서 브렉시트 조건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EU 탈퇴 조항을 발동하고, 조기 선거를 제안해 당의 과반을 허물면서 정치적 권위를 잃었다. 국가 지도자가 지녀야 할 결단력과 당 장악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영국 언론에서 로봇 같다는 ‘메이봇'으로 불리기도 했다.
취임 초반 파격적이고 세련된 패션으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메이는 무자비한 보수당 내분에 휩싸이고, 브렉시트 난제를 풀지 못하면서 결국 불명예 퇴진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가 메가폰을 잡고 의회를 향해 말을 들어달라고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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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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