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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잡지 낼 때마다 적자지만… 학자의 지혜 전해야 사회가 나아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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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 교수… 계간 '철학과 현실' 창간 30주년

"현실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철학은 현실에 뿌리내려야"

조선일보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는 “‘철학과 현실’을 창간할 때 목표를 크게 세웠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목표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 열정 있는 후배들이 많이 나타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계간 '철학과 현실'이 창간 30주년을 맞는다. 1988년 비정기 무크지로 출발해 이듬해 계간지로 전환했다. 철학 전문지가 30년을 지속한 것은 어려운 우리 출판 환경에서 기적 같은 일이다.

창간 때부터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현재 발행인을 맡고 있는 이명현(80) 서울대 명예교수는 "데카르트나 칸트 같은 서양 철학자들은 당대 현실을 철학적으로 사고한 것인데 우리는 서양 철학자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철학 공부의 핵심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현실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철학을 현실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간지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창간 때 잡지 모토를 '철학의 현실화, 현실의 철학화'로 정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매호 4500부를 찍지만 팔리는 책은 10% 수준이다. 나머지는 정부 기관과 학교·도서관 등에 보내고 있다. 창간을 주도하고 20년간 발행인을 맡았던 고(故) 김태길 서울대 교수가 사재(私財)로 설립한 재단에서 나오는 이자로 비용을 충당한다. 이 교수는 "잡지를 낼 때마다 적자지만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앞선 지혜를 가진 학자들의 얘기를 전파해야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란 사명감에서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때 교육부 장관을 지낸 후 다시 계간지 발간 일로 돌아온 것도 사명감 때문이다.

이 교수는 1970~80년대 '운동권'이었다. 1980년 강제 해직돼 4년 1개월간 대학 밖을 떠돌았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좌파는 아니었다"고 했다. "공산주의는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늘 뇌리에 있었다"고 한다. 1947년 고향 신의주에서 김일성을 비판하다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가 남쪽으로 피신하라고 해 어머니와 형님 따라 38선을 넘었다. 남쪽에서 초등학교 입학 때 호적을 새로 만들어 1942년생이 됐지만 실제는 1939년생이다.

현 정부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탄생한 신생 국가 중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발전한 나라인데 이 정권 사람들은 역사의 진전 과정에서 볼 때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최근 호에서 '민주주의 위기' 좌담 등을 실은 것도 현 정권의 문제에 대한 진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곧 출간될 통권 120호에는 '미래 한국의 나아갈 방향' '한국 과학기술의 현주소' 등으로 특집을 꾸몄다.

22일 오후 6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기념행사를 갖는다. 이 교수는 "이제는 잡지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물러나야 할 텐데 헌신적으로 출간을 맡을 사람이 있을지 걱정"이라면서 "인터넷 잡지 형태로의 전환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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