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라인 망신주기 등 제식구땐 비판 쏟아내더니
밤샘수사 관행 여전한데도 일반사건 수사에선 무관심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시아경제 이기민 기자]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때 피의자 권리를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법원 등 법조계가 곧바로 이어진 '버닝썬' 수사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 사이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를 받던 법원 등의 당사자나 내부자들은 "당해보니 알겠다"라거나, "포토라인은 망신주기다, 무죄 추정원칙에 어긋난다"는 등 비판을 쏟아냈다. 법조문에 있는 피의자ㆍ피고인 권리를 검찰이 중시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지난해 10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검찰 소환 조사에 대해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전산망(코트넷)에 '밤샘수사, 논스톱 재판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올려 "밤샘조사는 고문하는 것과 진배 없다"고 비판했다.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는 관행에 대해서도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포토라인은 현대판 멍석말이"라고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포토라인에 설 의무가 없다'며 거부하자 이를 거드는 취지였다. 아울러 검찰의 수사상황 브리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검찰 수사 대상이 된 법원뿐 아니라 변호사 등 법 전문가들도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변호사협회ㆍ법조언론인클럽은 지난 1월 토론회를 열어 검찰과 언론이 편의상 정한 포토라인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논의했다. 당시 토론회에는 "포토라인에 서는 사람은 혐의 사실을 조사받는 단계에 있는 것에 불과"하다며 "일반인으로 하여금 유죄라는 심증을 갖게 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성접대 알선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승리가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도착해 조사실로 이동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이 같은 수사 관행은 버닝썬 수사에서도 여전하지만 법조계는 아무런 '훈수'도 두고 있지 않다. 성매매 알선 혐의가 적용된 승리(29ㆍ본명 이승현)ㆍ불법 촬영물 촬영 및 유포혐의를 받는 정준영(30)ㆍ최종훈(29) 등은 21시간에 달하는 경찰 밤샘 조사를 받았다. 수사 상황에 대한 경찰의 브리핑도 여전하다. 승리와 정씨는 포토라인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고, 이문호 버닝썬 대표의 구속영장심사 때도 포토라인은 설치됐다.
한 중견 법조인은 "유독 자신의 조직이 위기에 처할 때만 목소리를 낸 것은 순수한 제도 개선 의견이 아닌, 권력 있는 사람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논의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사법농단 당시 법관들 일부는 코트넷, SNS를 통해 피의자 권리를 훼손하지 말라는 주장을 활발히 폈지만 일반 사건에는 여전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국민은 판사들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던 것으로 인식할 것이기 때문에,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순기능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