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1 (월)

트럼프·도이체방크 유착 “20년간 2조원 대출”…검찰·상하원 조사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독일계 투자은행 도이체방크와 수십년간 불법적인 유착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현재 미국 상·하원과 뉴욕주 검찰은 트럼프 대통령과 도이체방크의 관계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말부터 대통령 취임 전까지 도이체방크로부터 빌린 약 20억달러(약 2조2600억원)를 자신의 부동산 사업에 활용했으며, 당국의 규제를 방어하는 데에도 은행과의 관계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이체방크는 미국 내에서 투자은행 부문을 키우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다지는 선택을 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인맥을 고객으로 삼기도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은 의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도이체방크로부터 더 많은 대출을 받기 위해 자산을 부풀린 서류를 제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뉴욕주 검찰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4년 프로풋볼리그(NFL)의 ‘버펄로 빌즈’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도이체방크에 거짓 재무제표를 제출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도이체방크에 소환장을 발부한 상태다.

이와 관련, NYT는 이날 "도이체방크가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된 재무제표를 받아들이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뉴욕주 우체국 건물(현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리모델링 사업을 수주할 기회를 안겨줬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도이체방크의 첫 연결고리가 된 마이크 오핏. /NYT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도이체방크와의 관계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월스트리트에 처음 진입한 도이체방크는 마이크 오핏, 저스틴 케네디 등 골드만삭스 출신 트레이더(주식이나 채권 등을 매매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데 혈안이었다고 한다. 오핏과 케네디는 각각 저명한 작가 시드니 오핏과 앤서니 케네디 전 미 연방대법관의 아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오핏과 인연이 깊었다고 한다. ‘경쟁자들로부터 두드러지는 한 가지 방법은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던 오핏은 카지노 거물이라는 화려한 이름 이면에 ‘모든 은행이 꺼리는 파산 전문가’라는 별칭이 붙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그와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맨해튼 남부에 있는 자신 소유의 건물을 재건축하기 위해 오핏을 만나나 1억2500만달러(약 1400억원)를 대출받았다.

오핏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후 골프 여행을 함께 다니자고 제안하고 복싱 경기를 보기 위해 개인 헬리콥터를 빌려주는 등 자신에게 후하게 감사 표시를 했다고 회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핏의 아버지인 시드니 오핏에게도 편지를 보내 "훌륭한 아들을 뒀다"고 칭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뒤로도 오핏과 관계를 이어갔다. 뉴욕 유엔청사 인근에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해 3억달러(약 3400억원)가 필요했을 때도,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를 위해 수억달러가 필요했을 때도 오핏을 찾았다. 그리고 오핏은 그에게 융자를 내줬다.

그러나 오핏은 그로부터 몇달 뒤 도이체방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 그의 방식이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연줄을 찾아야만 했다.

조선일보

오핏과 트럼프 대통령이 나눠 가진 뉴욕 맨해튼의 아트 데코 건물 모형. 트럼프 오거니제이션과 도이체방크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NYT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아직 케네디가 남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핏이 해고된 이후 수년간 케네디를 통해 맨해튼에 있는 제너럴모터스 빌딩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빌리는 등 도이체방크와의 관계를 지속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케네디의 아버지이자 당시 대법관이었던 앤서니 케네디도 종종 트럼프 대통령의 전담 팀을 찾아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그러던 2003년, 트럼프 대통령은 리차드 번이 이끄는 도이체방크 팀에게 채권 판매를 맡겼다. 번은 카지노 산업에 훤한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1980년대부터 친분을 쌓아온 인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팀과 함께 호텔·카지노 채권을 팔기 위해 기업 대표들과 펀드 매니저들을 만나러 다녔다. 한 가지 문제는, 그들 중 소수만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보다못한 트럼프 대통령은 팀원들을 모아 솔깃한 제안을 했다.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의 호텔·카지노의 채권을 파는 데 성공하면 플로리다주에 있는 자신 소유의 마러라고 리조트로 휴양을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이에 고무된 팀원들은 수억달러 상당의 채권을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15명을 즉시 그의 전용기 보잉 727기를 태워 마러라고 리조트로 보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이들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트럼프 호텔·카지노 리조트가 이듬해인 2004년 채무불이행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도이체방크의 상업용 부동산 부문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시카고에 92층짜리 건물을 짓기 위한 융자를 얻기 위해서였다. 도이체방크는 이를 위해 절차를 진행하던 중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자산 가치를 부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2005년 그에게 5억달러(약 5600억원)가 넘는 돈을 빌려줬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다가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생각했던 만큼의 아파트를 분양하는 데에 실패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금융위기가 천재지변에 맞먹는다는 논리를 펴 도이체방크의 자산 압수를 막았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금융위기를 쓰나미로 지칭한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도이체방크 측은 법정 공방을 펼치며 사이를 좁혀갔다.

조선일보

트럼프 대통령의 자산 운용을 맡은 도이체방크의 로즈마리 브라블릭. /NYT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카고 건물을 위해 도이체방크로부터 융자를 받았을 무렵, 도이체방크는 미국 내 투자은행 부문을 확장하기 위해 로즈마리 브라블릭을 고용했다. 1980년대 씨티은행 투자은행 부문에서 일한 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거쳐 도이체방크에 합류한 브라블릭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의 자산 운용을 맡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도이체방크가 2010년 법적 싸움을 멈추고 난 뒤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산을 운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블릭과 함께 마이애미 등을 다니며 자신이 사려는 부지를 보여줬다. 도이체방크는 고객인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들어주기 위해 그의 자산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부동산 자산 일부를 약 70% 부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채무가 적다는 점을 들어 융자를 허용했다.

도이체방크와의 관계를 확신한 트럼프 대통령은 도이체방크의 투자은행 부문에서 돈을 빌려 상업용 부동산 부문에 진 채무를 갚겠다고 나섰다. 금융 위기와 맞물려 도이체방크와 2년간 법정 공방을 벌였던 바로 그 빚이다.

투자은행 부문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른 고객들에게 채무불이행을 거듭하고도 돈을 빌릴 수 있으며, 나아가 은행을 상대로 고소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도이체방크는 결국 브라블릭의 손을 들어 트럼트 대통령에게 융자를 내줬다.

이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브라블릭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도이체방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쿠슈너 고문의 어머니 등 트럼프 대통령 가족들에게도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쿠슈너 고문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가 소유하고 있던 매체 ‘더 모기지 옵저버’에 브라블릭을 홍보하는 기사를 실었다. 도이체방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이 출연한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조선일보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브라블릭. /NYT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4년 NFL의 버펄로 빌즈 소유주가 사망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변호사 코언은 브라블릭을 또 한번 찾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버펄로 빌즈를 구매할 여력이 있다는 것을 NFL에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블릭에게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 상당의 융자와 함께 그의 순자산이 87억달러(약 9조 8300억원)에 달한다는 내용의 재무제표 작성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코언은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도이체방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를 부풀린 재무제표를 마련해줬다’고 증언했다.

버펄로 빌즈를 사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은 트럼프 대통령이 브라블릭을 통해 얻은 가짜 재무제표로 연방기관으로부터 뉴욕주 우체국 건물을 리모델링할 담당 업체로 선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트너사였던 부동산투자회사 콜로니캐피털이 프로젝트에서 빠졌을 때도 브라블릭은 트럼프 대통령을 도와 도이체방크로부터 융자를 얻어줬다. 이번에는 당시 도이체방크 공동 최고경영자(CEO)였던 안슈 자인과 함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블릭, 자인 CEO와 점심을 함께 한 뒤 1억7000만달러(약 2000억원)를 빌릴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대선 후보 시절에도 브라블릭을 통해 도이체방크에서 1900만달러(약 214억8000만원)를 융자받았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브라블릭에게 융자를 부탁했을 때는 도이체방크 내 반발로 무산됐다. 은행이 대선 후보에게 돈을 빌려줄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이 쓴 선동적이고 공격적인 수사도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출된 뒤, 도이체방크는 긴급 내부회의를 열었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도이체방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돈을 많이 빌려준 은행이 됐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도이체방크는 투자은행 부문이 트럼프 대통령의 인맥을 통해 고객을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 트럼프 대통령의 좋지 못한 평판과 채무불이행 전력을 무시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거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올라왔지만 도이체방크 고위 간부들이 이를 간과한 정황도 드러났다.

도이체방크는 결국 직원들에게 ‘트럼프 발설 금지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도이체방크가 트럼프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고객들이 은행과의 업무를 중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이 같은 전말이 밝혀지면서 도이체방크는 미 의회와 뉴욕주 검찰의 조사 대상이 됐다.

이와 관련, NYT는 소식통을 인용해 "도이체방크는 다음 달 미 의회에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비롯한 상당한 양의 내부 문건을 넘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브라블릭 역시 의회에 증인으로 서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수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