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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눈이 부시게' 종영] 지금까지 이런 드라마는 없었다…'국민 배우' 김혜자의 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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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김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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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눈이 부시게’ 방송화면. /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사랑하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배우 김혜자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9일 종영한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극본 이남규 김수진, 연출 김석윤)의 마지막 장면이다. 극 중 혜자 역을 맡은 그는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눈부신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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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눈이 부시게’ 방송화면. /

◆ “마지막까지 완벽한 드라마”

지난달 11일 처음 방송을 시작한 ‘눈이 부시게’는 첫 회부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주어진 시간을 다 써보지 못하고 잃어버린 여자와 찬란한 순간을 스스로 내던지고 무기력한 삶을 사는 남자의 ‘시간 이탈 로맨스’를 다룬다는 극 소개는 뻔한 타임 슬립을 예상하게 했다. 그러나 ‘국민 배우’ 김혜자를 중심으로 한지민·남주혁·손호준·이정은·안내상 등 배우들의 열연이 작품에 개연성을 높였다.

첫 회에서는 스물다섯 혜자의 풋풋한 모습을 그리며 웃음을 자아냈고, 서서히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며 매회 보는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특히 지난 12일 방송된 10회에서 “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라는 김혜자의 한 마디가 보는 이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것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 혜자의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시계를 돌리면 시간이 앞으로 간다는 설정에, 되돌린 시간만큼 늙어버린 혜자의 뒤엉킨 일상. 다소 만화 같은 설정이지만 워낙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 덕분에 울고 웃으며 본 시청자들은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지금까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이를 바라보는 작품은 많았지만, 환자의 시선으로 흘러가는 드라마는 없었다. 신선한 충격은 뭉클함으로 바뀌었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시간과 삶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날이 아주 눈부시다”고 말하는 혜자의 미소가 작품이 말하고 싶은 모든 걸 대신했다. 마지막 회를 본 시청자들은 “끝까지 완벽한 드라마” “아직도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등 극찬을 쏟아냈다.

‘눈이 부시게’의 마지막은 백발노인이 된 혜자가 장식했다. 요양원에서 나온 그는 아들(안내상), 며느리(이정은)와 시골에서 살아갔다. 기억은 마치 깜빡이는 전구처럼 과거와 현재를 뛰어넘지만, 혜자는 행복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도 어느새 부드러워졌다. 현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엄마가 안타까워, 짜증 섞인 말과 행동으로 일관했지만 어느새 깨달았다. “어머니는 어쩌면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간 속에 살고 계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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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눈이 부시게’ 방송화면.

◆ “그래 이 연기야”…역시 ‘국민 배우’ 김혜자

‘눈이 부시게’는 첫 회 시청률 3.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시작해 서서히 상승세를 타며 지난 18일 방송된 11회에서 8.5%까지 찍었다. 반환점을 돈 이후부터는 줄곧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켰다.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큰 몫을 했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김혜자가 있었다. 그는 25살 혜자와 70살 혜자를 오가며 극의 균형을 잡았다. 방송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김혜자는 “말이 느린 편이어서 스물다섯 혜자를 연기할 때 신경 썼다”고 털어놨다. ‘국민 배우’의 노력 덕분에 ‘몸은 70대, 마음은 20대’라는 억지스러운 설정도 현실이 됐다.

스물다섯 혜자는 갑자기 늙어 버린 현실이 무섭고, 빛나는 청춘을 즐기지도 못하고 혼자만 늙어 버려 분하고 억울해했다. 그러다 점점 현실을 받아들였다. 자신을 어색해하는 아빠(안내상)에게 먼저 다가가 환하게 웃고, 미용실에서 고생하는 엄마(이정은)도 도왔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 이현주(김가은)와 윤상은(송상은)을 비롯해 새롭게 사귄 친구 샤넬 할머니(장영숙)까지 많은 이들과 교감했다.

김혜자는 몸은 늙었지만 활기차고 당당한 스물다섯의 눈부신 날을 완성했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작품에 빛과 소금이 됐다. 계란 장수의 요청으로 “계란이 왔어요”를 녹음해 돈을 벌고, 요리를 맛본 뒤 “그래 이 맛이야”라고 자신이 출연한 광고 유행어를 내뱉은 배우 김혜자는 낯설면서도 사랑스러웠다. 이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장면에서는 웃음기를 싹 뺀 채 공허한 눈빛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극 중 혜자로 살아가는 내내 작품을 쥐락펴락, 모두를 웃고 울리며 ‘국민 배우’라는 애칭이 과하지 않다는 걸 제대로 입증했다.

혜자의 스물다섯을 연기한 한지민도 극에 매끄럽게 녹아들었다. 이준하 역을 맡은 남주혁도 “연기력이 일취월장했다”는 평가를 얻을 정도로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혜자가 남주혁을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혜자의 상상 속 준하와 과거 모진 고문을 버티다 세상을 떠난 혜자의 남편 준하, 현실의 요양원 의사 김상현까지 여러 얼굴을 넘나들었지만 어색함이 없었다. “널 애틋해 했으면 한다”는 혜자의 말에 온몸에 힘을 빼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눈이 부시게’에서 웃음을 책임진 김영수 역의 손호준도 빛났다. 철없고 모자란 것 투성이인 혜자의 오빠로 매회 극에 활력과 재미를 더했다. 시청자들은 “손호준 얼굴만 봐도 웃긴다”며 호응을 보냈다.

스물 다섯 혜자의 부모이면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일흔 살 혜자의 아들과 며느리 역의 안내상과 이정은도 놓칠 수 없다. 특히 늙어버린 딸을 어색하게, 때로는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아빠의 눈빛이 실은 치매에 걸린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이었다는 게 밝혀지자 시청자들은 무릎을 쳤다. 더욱이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강하게 키우려 모진 말을 한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아픈 다리보다 마음의 병이 더 깊었다. 하지만 마지막 회에서 아들은 엄마의 사랑을 깨달았다.

혜자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요양원에서 사라졌다. 연락을 받고 급히 혜자를 찾아 나선 아들은 홀로 눈을 쓸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아들은 엄마를 말렸지만, 엄마는 “눈 쓸어야 해요. 우리 아들 넘어져요”라고 했다. 아들은 과거 눈 내린 날 아침, 아픈 다리로 조심스럽게 학교에 가던 길을 떠올렸다. 자신이 가는 길은 눈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사실은 엄마가 이른 아침 먼저 나와 길을 치워놓은 것이었다. 아들은 서러움을 토해내듯 눈물을 쏟으며 “아들은 몰라요”라고 했지만 엄마는 웃으며 “몰라도 된다. 우리 아들만 안 넘어지면 된다”고 답했다. 그런 엄마에게 아들은 다시 “아드님은 눈 오는 날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대요”라고 털어놨다. 혜자가 사라진 뒤 안내상은 아내에게 “평생 내 앞에 눈을 치워준 게 엄마였다”며 주저앉았다. 그의 뜨거운 눈물에 시청자들도 숨죽여 울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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