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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트럼프 입장에서 본 하노이 북미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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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협상(deal)의 달인’이다. 아니, 최소한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 그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만 하루 걸려서 베트남까지 날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지만 “항상 걸어나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합의도 없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왔다. 트럼프는 왜 하노이를 찾았고, 김정은을 두 번째 만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경향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럼프 대통령, 미국 측 통역,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리용호 북한 외무상, 북한 측 통역, 김 위원장,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하노이|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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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으로 한반도에서 “수천명이 죽어도 거기서 죽는 것”이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가 북핵 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것은 아마도 협상의 달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못한 일을 본인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꼬마 로켓맨”이라고 욕하던 김정은에 대해 “케미가 맞다” “사랑에 빠졌다”며 180도 태도를 바꾼 것도 마음이 아니라 필요 때문이다. 한 때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로이 콘은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는 그 사람이 도움이 되면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덤벼든다. 그는 장사꾼이다. 당신이 그에게 뭘 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재선을 걱정해야 하는 트럼프에게 북핵은 나름의 성과물이 될 수 있다. 곧 러시아 게이트 특검 수사 결과가 발표된다. 하원을 잡은 민주당은 트럼프는 물론 그의 가족과 기업까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고, 뉴욕 검찰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재선에 실패하면 사업은 망하고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 도움이 된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잘만하면 노벨 평화상이란 명예가 부상으로 따라올지도 모른다. 일단 정상회담 날짜부터 잡았다. 김정은을 만나면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기대와 현실의 괴리다. 국가정보국장은 대놓고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북한이 노리는 것은 트럼프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실수(CVIM)’라는 비아냥도 들렸다. 물론 본인도 불안했던지 회담 열흘쯤 전에는 “나는 서두를 게 없다”며 별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복선을 깔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하노이에서 만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테니 2016년 이후 부과된 유엔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모든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자는 요구는 묵살당했고, 비핵화 로드맵을 마련하자는 제안도 거절당했다. 영변만 내주고 핵도 경제도 다 가지겠다는 속셈이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말한 비핵화의 진정성에 대해 심각한 회의감이 들었을 것이다. 서로 모든 것을 걸자는 ‘올인’ 제안도 비핵화 발언의 진정성을 떠보려는 시도였는지 모른다.

트럼프는 결국 ‘노딜(no deal)’을 택했다. 장사꾼은 두 번 속지 않는다. 이번에도 북한에 당했다는 평가를 받는 합의를 하면 재선에 큰 악재가 될 것이란 어느 정치인 친구의 경고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내가 오늘 합의안에 서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당신들은 끔찍한 합의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성과없이 돌아섰지만 미국 내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민주당도 주류 언론도 “노딜이 배드딜(bad deal)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역사적 현장의 먼지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지금 트럼프는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북핵 문제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까. 차라리 전략적 인내로 돌아갈까. 다행인 것은 트럼프 입장에서 아직 ‘굿딜(good deal)’의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김정은과 돌아서면서도 “악수했던 손의 온기가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안만나는 게 나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검은 속내를 숨김없이 들여다 봤으니 이제부터 진짜 협상이 가능할지 모른다. 트럼프가 북핵 문제에서 진정한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보여줄 수 있을까.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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