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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데스크칼럼]되살아난 전세시대가 씁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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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전세시대가 종말을 맞을 것이란 데 별 이견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저금리 기조가 보편화됐던 2014~2016년께다. 예금금리가 1%대로 은행에 돈을 맡겨놔봤자 별 재미를 못보자, 집주인들이 예금을 해제하거나 추가 대출을 받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월세를 받기 시작했다. 대출이자를 내고도 이익이 남았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월세로 살라고 권했다. 2016년 1월13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금리가 올라갈 일도 없는데 누가 전세를 놓겠느냐”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맡기도 했다. 반전세 형태였던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공급정책을 강조하며 던진 이 말은 사실상 전세시대 종말 선언과도 같아 서민들을 아프게 했다.

그랬던 전·월세 시장이 달라졌다. 2년 새 전세가 늘고 월세가 줄었다. 전세 종말을 걱정하던 목소리는 온데 간데 없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 중 전세는 전체의 73%다. 올 들어서도 1~2월 전세가 72.4% 수준이다. 2017년 서울 전월세 거래량 중 전세 비중은 69%로 1년 새 4%포인트나 늘어난 셈이다.

2013년만해도 전체 임대차 거래량의 77%에 달했던 전세가 한 때 50%대까지 줄었다 다시 늘어난 이유는 뭘까.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새 아파트 물량이 증가한 까닭이다. 2007년부터 2016년 평균 30만 가구가 채 안되던 전국 입주아파트는 2017년 38만여가구, 2018년 44만 가구로 늘어났다. 올해와 내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물량이 쏟아질 예정이라 전셋값 급등, 전세물량 부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판이다.

전세가 늘어난 두번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갭투자 효과다. 2016~2017년 붐이 일있던 갭투자는 초기 투자금을 최소화해야 하므로 대부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방식이었다. 당시 갭투자가 시세 차익을 보고 팔 때 양도소득세를 물지 않으려면 ‘2년 보유’라는 조건만 만족하면 됐다. 이 와중에 대출 등 각종 규제가 생기면서 집을 못판 갭투자들이 유주택자로 시장에 남게 됐다. 이들이 전셋집 공급에 일조하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전세가 늘어났다고 마냥 좋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역전세난을 넘어서 깡통전세를 우려해야 할 판이다. 전세시대가 되살아났지만 씁쓸함이 남는 이유다.

앞으로는 더 걱정이다. 정부가 주택시장 규제를 강화하면서 주택 인허가 물량이 급격히 줄었다. 2016년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50만6816가구, 2017년 46만8116가구, 2018년 40만6165가구로 감소세다. 인허가를 받은 후 6개월 내 착공한다고 가정하면 2~3년 후 입주 아파트 감소는 불가피하다. 지금과 달리 새 아파트를 시작으로 전셋값이 오름세를 타고, 세입자들이 수도권 외곽으로 또는 월세로 밀려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2~3년 후를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 대책만 편다면 ‘되살아난 전세시대’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외국인들도 부러워하는 한국의 전세 제도를 지킬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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