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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영국 정부의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합의안이 또 다시 의회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브렉시트를 불과 17일 남긴 시점에서 아무런 합의 없이 탈퇴하는 이른바 노 딜(No Deal)부터 브렉시트 연기, 제2 국민투표 등 그간 거론됐던 모든 시나리오가 재차 테이블 위로 올라온 모습이다. 갈수록 커지는 불확실성에 경제계는 즉각 브렉시트 시점을 미룰 것을 촉구했다.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영국 하원은 12일(현지시간) 오후 테리사 메이 내각이 EU와 합의한 '탈퇴협정 및 미래관계 정치적선언', '안전장치(backstop)' 관련 보완책을 놓고 2차 승인투표(meaningful vote)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찬성 242표, 반대 391표로 합의안은 149표차로 부결됐다.
이는 영국 정부가 의회에 기록한 패배 중 역대 네 번째로 큰 표차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노동당 238명, 집권 보수당 75명, 스코틀랜드국민당(SNP) 35명, 무소속 17명, 자유민주당 11명, 민주연합당(DUP) 10명, 웨일스민족당 4명, 녹색당 1명 등으로 집계됐다. 표결 직후 메이 총리는 당초 예고대로 13일 하원에서 노 딜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표결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의회가 노 딜 브렉시트도 거부할 경우 다음날인 14일에 브렉시트 연기를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이 내각의 유일한 위안은 의정 사상 최대 표차 부결을 기록한 1월(230표차)보다는 반대표가 적다는 점"이라며 "메이 총리가 통제권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블룸버그통신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위에) 올라왔다"면서 "영국은 더 깊은 정치적 위기에 몰렸고, 브렉시트가 연기되거나 심지어 번복될 수 있다는 전망이 한층 더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전날 메이 총리는 장 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과 만나 영국이 원할 경우 안전장치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에 극적으로 합의했으나, 의회를 설득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부 장관이 이날 오전 아일랜드 국경에서 안전장치의 법적 위험이 변하지 않았다는 검토 결과를 내놓자, 강경 브렉시트파를 중심으로 한 반발이 거세진 것으로 보인다. 보수당 소속으로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 대다수는 강경 브렉시트파로 파악됐다.
EU는 즉각 실망감을 표시했다. 도날트 투스크 EU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대변인을 통해 배포한 성명에서 "EU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우리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유감을 표했다. 융커 위원장 역시 "교착상태를 해결할 방안은 이제 영국이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히는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하며 영국을 압박했다.
그간 EU가 브렉시트 연기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왔음을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14일 의회 표결, 영국의 공식적인 요청 등을 거쳐 양측이 브렉시트 시점을 미루는 절차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3월 29일 11시로 예정된 브렉시트 시점을 늦추기 위해서는 EU 27개 회원국의 승인을 얻어야만 한다. 다만 가디언은 이를 위해서는 영국 정부의 합당한 이유가 제시돼야 할 것이라는 EU회원국들의 입장도 덧붙였다. 5월 유럽의회 선거 일정을 감안할 때 연기 기한이 10주를 넘어서진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FT는 "그들이 간신히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 같은 드라마를 몇달 연기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이 브렉시트 결정을 번복하기 위한 제2 국민투표를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러미 코빈 총재는 이날 "정부의 협상안은 사실상 효과가 없다"며 "하원이 새로운 제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브렉시트를 연기한 후 조기총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영국 산업연맹(CBI)과 중소기업연합, 수출입협회 등 경제계는 이날 의회 표결 직후 질서없는 브렉시트를 우려하는 내용의 성명을 각각 발표하며 브렉시트 연기 등 신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영국의 1월 무역적자는 130억8400만파운드로 2017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브렉시트를 앞두고 런던 주택시장이 얼어붙으며 같은 달 주택가격상승률은 약 6년래 최저 수준에 그쳤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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