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가사·육아 철저히 부부 분담 원칙
워라벨 누리며 출산율은 한국 2배
촘촘한 복지 정책이 든든한 역할
징병제라 여성도 10개월 군 복무
한국 정부는 현금 살포 치중해
저출산 심각한데도 해외입양 계속
여성이 일과 가정 병행 가능하게
정부는 인프라 투자에 집중해야
스웨덴은 양성평등이 뿌리내려 남자들도 가사를 분담하고 여자들은 아이를 많이 낳으면서도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며 행복하게 산다. 반면 한국에선 일부 젊은 남성들이 "여자들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여성들은 "이런 나라에서는 결혼도 출산도 싫다"며 얼굴을 붉힌다. 극과 극이다.스웨덴과 한국의 이런 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스웨덴 현지에 가서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실천하는 워킹맘들과 '라떼 파파'들을 만나봤다.
워킹맘인 카밀라 부사장이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고 씌인 상자를 들고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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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 본사를 둔 정보기술(IT) 솔루션 업체(Catalyst one)에서 인적자원 및 기업문화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는 카밀라(47). 10대 아들과 딸을 둔 직장 생활 23년 차 워킹맘이다. 그가 다니는 스웨덴 지사는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선정됐는데 남녀 직원이 각각 15명으로 50대 50 비율을 정확히 맞춰 눈길을 끌었다. 오후 3시쯤 사무실에 찾아갔더니 마침 '피카(Fika) 타임'이었다. 직원들이 커피와 케이크를 다 함께 나눠 먹으면서 대화하는 스웨덴의 독특한 기업 문화다. 기업에 따라 적게는 주 1회, 많게는 매일 2~3회 모인다. 이 업체가 남녀 모두에게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선정된 비결을 물어봤다. "성별이나 종교 등과 무관하게 모든 직원을 소중하게 대한다. 위계질서보다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기업 문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사내에 존칭을 없앴다. 직원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 판단해서 일하고 결과에 책임진다."
전자기기·가전제품 유통업체(엘기간텐 AB)에서 인사관리를 담당하는 한나(43) 부장은 아들 셋을 둔 18년 차 워킹맘이다. 아이 낳을 때마다 유급 육아 휴직 480일을 주는데 남편이 90일을 쓰지 않으면 없어지다 보니 최대한 찾아 썼다. 막내를 낳은 뒤 다 쓰지 못한 육아 휴직 일수는 여름 휴가 때 쓸 계획이다. 삐삐라는 별명처럼 한나씨는 TV 극 '말괄량이 삐삐'(원제는 ''삐삐 롱 스타킹') 속 주인공처럼 강하고 독립적인 소녀 시절을 보냈다. 한나 부장과 남편의 가사 분담 비율은 6대 4 정도이지만 불만은 없다. 가장 큰 행복의 조건은 가족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스웨덴의 양성평등 점수는 80점, 워라벨 점수는 90점 정도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한나 부장은 워라벨 점수를 90점이라고 자평했다. 별명인 삐삐처럼 포즈를 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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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도 특혜도 사양하는 여성들
스웨덴은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 천국이고 양성평등 수준도 가장 높은 나라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부가 지난 수십년간 일군 결실이다. 출산·육아·교육 등 단계별로 복지 정책이 촘촘하게 갖춰져 있다. 하지만 정부의 혜택이나 시혜가 전부는 아니다.
스톡홀름 시내를 순찰하는 여성 기마 경찰관. 스웨덴 여성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장세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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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시내 중심가에 있는 모닝턴 호텔 앞길을 순찰 중이던 여성 기마 경찰관은 영하 7도의 냉습한 날씨에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입헌군주국인 스웨덴의 왕궁 입구에서 대검을 꽂은 소총을 든 경비병도 여성이었다.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지난해 병역제도가 바뀌면서 스웨덴 여성들도 희망에 따라 규정된 절차를 거쳐 군대에 간다. 평균 10개월간 복무하는데, 남녀 구분없이 생활관을 함께 쓴다.
스웨덴의 헬스클럽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체력을 보충해 남자와 대등하게 일하겠다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덴마크에 있는 세계 최대 정자은행(Cryos International)의 주요 고객이 스웨덴 여성이라고 한다. 비혼 여성이 출산하더라도 일반 부부와 동등한 복지 혜택을 주는 데다, 남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엄마가 되려는 여성도 많다는 얘기다.
'라떼 파파'에 이어 요즘엔 '아이폰 파파'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스톡홀름 거리. 장세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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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르스 다니엘손 전 주한 스웨덴 대사와 박현정 주한 스웨덴 대사관 공보실장이 함께 쓴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에 등장하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면 스웨덴 남자들의 단면이 엿보인다. 국가 비상사태가 터져 국방부 관계자가 군사령관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아기띠를 매고 아이를 달래던 사령관은 "나는 지금 육아 휴직 중인데 왜 나한테 전화를 한 거야"라며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실제로 스톡홀름을 비롯해 스웨덴의 도시에 가면 '라떼 파샤(Farsa)' 즉 '라떼 파파' 들을 언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른 한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다. 스톡홀름 거리에서 한손에 아이폰을 들고 유모차를 밀고 가는 '아이폰 파파'도 곳곳에서 만났다. 오전 8시 스톡홀름 시내의 칼손 스콜라 초등학교에 가봤더니 아이들을 등교시켜준 뒤 서둘러 직장으로 향하는 아빠들이 유달리 많았다.
스웨덴 이민 2세 커플의 가정. 오후 5시에 퇴근한 아빠가 요리를 맡으니 아내와 딸은 더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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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문화가 다른 한국과 스웨덴 남녀가 만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차창선 재스웨덴 한인 중앙회장은 "한국 남성이 여기 오면 스웨덴 여성이 50%를 책임져주니 한국 남성의 만족도가 높아 잘 지내지만, 반면 한국 여성은 스웨덴 남성이 50%만 책임져주니 오래 못 가는 흥미로운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스웨덴 가정에 입양된 클라라 정(23)은 한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는 "스웨덴보다 한국의 양성평등 상황이 좋지 않아 만약 내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여자로서 힘들었을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도 2명은 낳고 싶지만 한국은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스웨덴 인스티튜트(SI)가 주최한 '스톡홀름 위민 인 테크 콘퍼런스'에 참석한 각국 여성들. 장세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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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고치는 스웨덴, 한국은 현금 살포
이정규 주스웨덴 대사는 "2015년 16만4000명의 난민이 한꺼번에 유입되면서 난민에 반대하는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제3당으로 약진했다"며 "스웨덴은 새로운 고민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사실 스웨덴 정부는 난민 문제뿐 아니라 새로운 양성평등 이슈가 제기되면 적극적으로 해결을 모색한다.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을 계기로 스웨덴 정부 산하 스웨덴 인스티튜트(SI)는 '스톡홀름 위민 인 테크(women in tech) 콘퍼런스'를 열었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고 있지만, 기술 기업의 이사회에서 여성이 10%에 불과할 정도로 여성의 진출이 특히 취약하다는 판단에 따라 타개책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스웨덴 왕립공과대학(KTH)은 11~15세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술 축제(Tech festival)를 열어 이공계에 관심과 흥미를 고취하고, 비영리단체인 핑크 프로그래밍은 여성 프로그래머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고 있었다.
스톡홀름대학 안데손 교수는 "한국의 출산율이 1.0명 이하라는 소식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장세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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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회보험청 아케손 페르 박사는 한국에서 일부 남성들이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면서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든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데 대해 "노동시장은 남녀에게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일자리는 늘리면 된다"고 지적했다. 스톡홀름대학 안데손 교수는 "일과 가정 중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사회는 여성의 사회진출도 출산율도 모두 낮을 수밖에 없지만,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두 지표 모두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여성이 일하면 많은 기업이 여성의 다양한 요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도 출산율을 높이려면 현금 나눠주기가 아니라 어린이집·교육 등 인프라를 갖추는데 더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웨덴 아빠들은 육아를 분담한다. 아기띠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스웨덴의 발명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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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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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민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디지털 영상 편집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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