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 문건 공개 항소심에서
A4용지 빼곡히 써온 호소문 제출
“일본이 강제연행 인정했는지
온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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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위안부라고 불렸던 23명의 생존 할머니 중 한 사람입니다. 저의 고향은 평양이고, 저는 13살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제 나이 이제 92살입니다. 저는 제가 죽기 전에 꼭 진실을 밝히기를 원합니다.”
지난 2월20일, 올해로 92살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비뚤배뚤하지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호소문을 A4 용지에 빼곡히 써내려갔다. 길 할머니는 호소문에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인 강제 연행을 인정했는지를 국민이 알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호소드립니다.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낼 이 편지를 쓸 때만 해도 23명의 할머니가 살아 있었다. 하지만 지난 2일 곽예남 할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남아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2명으로 줄었다.
7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관한 문건 공개를 요구하는 항소심이 열려, 길원옥 할머니가 자신이 쓴 호소문을 재판부(행정3부·재판장 문용선)에 제출했다.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낸 송기호 변호사는 이날 길 할머니의 호소문을 법정에서 직접 읽었다. 송 변호사는 이날 재판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본질은 일본이 강제 연행을 인정한 상태에서 합의했는가 여부다. 1심에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받았지만, 외교부는 소송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불가역적이고 비가역적이라는 이 합의의 실체를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월1일부터 재판부가 요구한 자료에 아직 답을 내놓지 않는 상황이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인 정부를 향해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 공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 정부에 항의한 적이 있는지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또 “문서 형태가 아니더라도 재판장이 일본의 강제 연행 인정 여부를 법정에서 문답할 수 있을지” 묻기도 했다. 외교문서여서 공개할 수 없다면, 직접 재판장이 물어 확인할 수 있느냐는 취지다. 하지만 외교부를 대리하는 변호인은 이런 재판부의 요청에 “어렵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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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할머니는 지난 1월28일 별세한 평화운동가 김복동 할머니의 단짝이기도 하다. 김 할머니의 빈소에서 담담한 얼굴로 영정을 바라보던 그였다. 두 할머니는 2012년 전시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함께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두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김숨 작가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라는 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단짝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길 할머니는 “내가 (언니 몫까지) 잘해야지”라고 말하며 호소문을 썼다고 한다.
이번 소송은 2016년 처음 시작돼 2017년 1월 1심에서 원고가 승소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정보공개를 거부하며 곧바로 항소했고,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오는 4월18일에 최종 선고가 예정돼 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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