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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뉴스분석]김정은은 ‘단계적 타결’, 트럼프는 ‘올 포 올’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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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결렬’ 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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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서 지난달 28일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뒤 북·미는 각각 합의 무산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회담장을 나온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자정이 넘은 시각에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리 외무상의 심야회견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은 모든 제재의 해제를 원했다”고 밝힌 것에 대한 반박이 주된 내용이었다. 리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중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이 설명한 내용은 각자 입장에 입각한 것이어서 어느 한쪽 말이 진실이고 다른 쪽은 거짓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미국 설명에도 생략된 부분이 있고, 북한 해명에도 공개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단 실무급 조율에서는 영변 핵시설의 검증 가능한 폐기와 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내용에 공감대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를 기초로 넣고 빼기를 했다면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문에 서명할 수도 있었다”고 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을 가리킨다.

하지만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핵무기와 모든 제재 해제를 맞바꿔 ‘원샷 타결’하는 ‘올 포 올(all for all)’을 시도했다.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협의에서 ‘우리는 올인할 준비가 됐으니 북한도 올인으로 가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실제 회담 이틀 전부터 회담장 주변에선 미국이 ‘협상의 바’를 높였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밤 워싱턴으로 돌아온 뒤 방영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일부 지역에 대한 비핵화만 원했지만, 나는 전체에 대해 (비핵화를) 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이들은 그것(일부 비핵화)이 ‘훌륭한 출발’이라고 이야기했겠지만, 나는 그저 올바르다고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5개 제재 놓고도 ‘완전 해제 - 부분 해제’ 시각차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제재 완화가 아닌 ‘모든 제재의 전체적 해제’를 말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리 외무상은 회견에서 ‘단계적 방안’이 최선임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이러한 원칙적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북한도 이 같은 일괄타결에 관심이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공식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27일 단독회담 후 김 위원장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또 다음날 조선중앙통신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첫날) ‘포괄적이고 획기적인 결과 도출’을 위한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고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한 것은 북한이 일괄타결에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국과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을 내놓고 담판하는 것은 북한에 지극히 부담스럽다.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안전판으로 여긴다. 결국 북한은 숙고 끝에 미국의 일괄타결 제안을 수용할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은 2016~2017년 채택된 유엔 제재 중 섬유·석탄 수출, 원유 수입, 정상적 교역 등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필요한 항목의 제재를 푸는 데 집중하는 ‘원안’으로 돌아간 것으로 짐작된다. 리 외무상이 “현 단계에서 우리가 제안한 것보다 더 좋은 제안이 이뤄질 것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고 한 것에서 이 같은 정황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 방안은 미국이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대북 제재의 실질적 요소는 2016년 이후 만들어진 유엔 제재에 포함돼 있다. 그중에서도 리 외무상이 해제를 요구한 항목이 핵심이다. 미국은 북한이 대화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제재 내용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또 이 같은 수준의 제재 완화는 사실상 대북 제재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제재 완화를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받고 내줄 경우 감당치 못할 정치적 후폭풍에 시달릴 것이 뻔하다. 결국 양측은 이런 견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노 딜’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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