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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트럼프 ‘판 깨기’ 충격 요법, 김정은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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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싱가포르회담 직전에도 “회담 취소”

‘하노이 빈손’ 김정은, 재협상 자체가 굴욕
한국일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어떠한 합의도 없이 마무리 된 가운데 28일 트럼프 대통령이 숙소인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하노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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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판 벼랑 끝 전술인가. 구체적 비핵화 조치가 나올 것으로 기대됐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동산개발 사업가 시절 보여준 ‘막판 흔들기’ 협상술을 또다시 발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스캔들 등 국내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과의 ‘애매한 합의’로 비판을 자초하느니, 차라리 한 차례 판을 깨는 ‘충격 요법’으로 대북압박을 극대화해 ‘진짜 성과’를 얻어내겠다는 속내도 엿보인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 깨기 전술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 정상회담 때도 있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코 앞에 둔 5월24일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 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나는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고대했으나 슬프게도 북한의 최근 성명에서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에 근거할 때 지금 시점에서 오랫동안 준비했던 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당시 존 볼턴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미국 고위 관계자들이 ‘리비아 모델’을 언급하자,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성명 등을 통해 미국을 맹비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다면 만나지 말자’라며 회담을 취소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었다.

당시 판 깨기 전술은 유효했다. 원색적으로 미국을 비난했던 북한은 다시 김계관 제1부상 명의의 입장을 통해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며 자세를 낮췄다. 긴장됐던 분위기가 유화적으로 반전되며, 취소됐던 북미 정상회담도 재추진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협상에도 이 방법을 적극 활용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하노이 방문 중 무역협상을 담판 지을 시진핑(習近平) 주석과의 회담 가능성을 열어두다가, 돌연 취소하는 방법으로 중국을 압박했다.

이번 하노이 회담 결렬 역시 북한으로부터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판 자체를 한 차례 뒤엎어 차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심산이 깔려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대북제재가 유지되고 있는 한 시간은 여전히 자신 편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미국이 양보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합의를 하느니, 결렬시키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트럼프의 이 같은 전략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얼마만큼 움직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노이까지 와서 ‘빈 손’으로 평양으로 돌아가게 된 김 위원장 입장에선 차후 재협상에 나서는 것 자체가 굴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1차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돌연 취소했을 땐 김계관 제1부상 등이 저자세를 취하며 대화 국면을 이어갈 수 있었으나, 이번엔 김 위원장이 직접 저자세를 취해야 하는 형국이 됐다”고 평가했다. 신 센터장은 “수 주 안으로 후속 회담이 열리지 않으면, 북미 간 대화 공전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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