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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만만디’ 트럼프 대 ‘다급했던’ 김정은…처음부터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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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회담 두 정상 발언 톺아보니

트럼프 대통령 처음부터 “속도 조절”

김정은 위원장 “어려운 과정” 언급 대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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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두 정상은 베트남에서 처음 만나 악수할 때부터 ‘동상이몽’이었을까?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내 ‘빈손’으로 끝나면서, 1박2일 동안 북-미 두 정상이 공개석상에서 쏟아낸 발언들의 속내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시종일관 “급할 게 없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 내내 “결과를 보여줄 때가 됐다”며 회담을 서두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태도는 묘한 대조를 보였다. 실제 워싱턴에 산적한 정치 현안을 두고 온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시작부터 “우리는 이미 좋은 관계”라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며 이번 2차 회담에만 ‘올인’하지 않겠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처음부터 긴장된 듯 굳은 표정으로 “(협상) 시간이 중요하다”며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판돈과 처지가 다르고, 상대에게 원하는 게 달랐던 두 ‘갬블러’는 결국 협상 테이블을 접고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만만디’ 트럼프, 처음부터 거리두기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초기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애를 태우는 듯했다. 지난 26일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이용해 하노이에 도착한 직후 회담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아주 좋다”고 짧게 답했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 1차 회담 뒤 260일 만의 정상회담이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나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27일 김 위원장과의 첫 대면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이날 오후 정상회담장인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10여초 동안 두 손을 맞잡은 뒤 곧바로 속도조절을 시사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는 환담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베트남이 우리에게 카펫을 깔아주며 성대하게 맞아줬다. 우리가 매우 성공적인 첫번째 회담을 마친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진전이 빨리 이뤄지길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 관계가 (이미)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잠시 뒤 “우리는 매우 성공적인 1차 정상회담을 했다. 첫번째 정상회담은 커다란 성공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많은 진전을 이뤘고, 가장 큰 진전은 우리 관계다. 매우 좋은 관계”라는 말을 반복했다. 세기의 회담을 앞두고 지난 회담에 대한 만족감을 이렇게 거듭 밝히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2차 정상회담 결과에 목을 매지 않겠다’는 선긋기이거나,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고도의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는 ‘하노이 선언’ 최종 조율을 앞둔 28일 아침 양국 간 단독·확대 회담을 앞둔 머리발언에서도 “서두르지 않겠다. 속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어 발언 기회를 넘겨받은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는 시간이 중요하다”며 단독회담으로 넘어가려 하자, 그는 다시 “노 러시”(no rush), “노 러시”라며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햇수로 3년째인 국제 제재를 풀려는 북한의 다급한 처지를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전략인 듯했다.

■ ‘다급한’ 김정은, 의지 보였지만… 2차 정상회담에 나선 김정은 위원장은 전반적으로 1차 정상회담 때보다 더 긴장된 모습이었다. 27일 오후 트럼프 대통령과 260일 만에 재회한 김 위원장은 미소를 짓다가도 중간중간 경직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발갛게 상기된 볼이 따로 화장을 한 듯 도드라져 보일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실무 차원에서 협상 내용이 정리됐더라도 안심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를 한차례 겪어본데다, 미국 정가에서 코너에 몰려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는 예측 불가의 상황도 이런 불안을 더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베트남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처음 만난 환담 자리에서도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던 그런 기간이었던 것 같다”며 2차 회담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돌아봤고, “훌륭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친교 만찬에서도 김 위원장은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대화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만찬 등을 언급하며 “우리는 대단히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어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고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고 언급했는데, 김 위원장이 이런저런 제안을 많이 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직접적인 협상 결렬로 이어진 단독·확대 회담 직전에도 김 위원장은 반드시 결과물을 내놓겠다는 상당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비공개 회담 직전 “어제에 이어 이 순간도 전세계가 이 자리를 지켜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만남을 회의적으로 보던 사람들도 우리가 마주 앉아서 훌륭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데 대해 마치 환상영화의 한 장면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며 “오늘도 역시 훌륭한, 최종적으로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듭 “시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그동안 많이 노력해왔고 이제 그것을 보여줄 때가 왔다” “우린 (회담을 위한) 1분이라도 귀중하다”고 맞받았다.

‘느긋함’과 ‘절박함’의 묘한 대조를 보인 하노이의 1박2일은 마침내 두 정상의 ‘동상이몽’만을 확인한 채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작정하고 회담을 사실상 보이콧했는지, 아니면 김 위원장의 다급함이 결과적으로 ‘빈손 회담’으로 이어졌는지는 평가가 엇갈릴 전망이다. 다만 2차 회담 시작부터 “서두를 것 없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노현웅 이유진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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