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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트럼프 "영변 외 큰 핵시설 증거 댔더니…北, 깜짝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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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北 2차 핵담판 결렬 / 왜 결렬됐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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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숨겨왔던 새로운 핵시설에 대해 미국이 폐기를 요구하자 제2차 미·북 핵담판은 급속도로 얼어붙었으며 결렬 수순으로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 미·북정상회담 후 숙소인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변 핵시설보다 플러스 알파를 원했던 것"이라며 "나오지 않은 것 중에 우리가 발견한 것이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이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이야기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북한이 내놓은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에 대해 일부 핵 전문가들은 영변 시설이 이미 노후화했기 때문에 영변 시설 폐기만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실상 북한 측 '꼼수'가 미국에 덜미를 잡힌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추가로 발견한 시설이 우라늄 농축과 연관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확대 정상회담에 배석했고 기자회견에도 동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고 덧붙였다.

애초부터 북한은 완전한 핵시설 리스트를 내놓을 의지가 없었고, 오히려 미국이 모르는 시설은 최대한 숨기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사일도 빠져 있고, 핵탄두, 무기 체계가 빠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합의를 못했다. 핵 목록 작성과 신고, 이런 것들을 합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북한의 비공개 핵시설 발견 사실을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싱크탱크의 민간 전문가들이나 언론을 통해 북한의 비공개 핵시설 존재 가능성이 거론된 적은 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공개한 것은 더욱 특별하다. 이는 북한이 밝히지 않았지만, 미국이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향후 핵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북한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비핵화 조치와 관련해 미국 측 기대수준과 북한 측 의지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사실이 이번 담판 결렬로 더욱 명백해졌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로 미국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미국은 영변 외에 새로운 핵시설까지도 북한이 스스로 공개하고 폐기 의사를 밝히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제재 해제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 측 요구 수준과 미국 측 의도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완전한 제재 해제 또는 완화를 요구했다. 미국은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제재는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일부 제재 완화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완전한 제재 해제 카드를 내민 것이다.

일부 비핵화 조치에 대해 일부 상응 조치를 내놓는 방식을 거부하고 완벽한 '딜'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도 이번 회담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비핵화 의지가 있었지만, 완전하게 제재를 완화할 준비는 안 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합의문에 서명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현재 제재가 유지되고 있다. 제재가 하나도 해제되거나 완화된 게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협상 전략은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전쟁 선포에 대해 중국이 새로운 협상카드를 내놓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측 결단을 환영한다"면서도 "그러나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거절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옛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이 하노이 정상회담 기간에 하원 청문회를 통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북한에 요구하는 핵 신고 범위를 넓혔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자칫 손쉬운 합의에 그쳤다면 국내 정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알맹이 없는' 합의를 해주고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6월 제1차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에서 잘못된 합의를 했다는 비판이 비등한 상황에서 이번 회담 또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향후 국정 운영과 재선 가도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우려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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