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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최저임금 상한선 정한다지만…`기업지불능력`은 기준서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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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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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최저임금 인상에 미리 제동을 걸 수 있도록 인상률 상·하한선을 설정하는 구간설정위원회와 설정된 구간 범위에서 인상률을 최종 결정하는 결정위원회로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이원화하는 방안을 정부가 발표했다. 최저임금법이 다음달 안으로 국회 논의를 거쳐 이 같은 내용으로 개정되면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올해부터 새 결정체계가 작동한다. 하지만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서 지난달 정부가 초안에서 제시한 기업지불능력이 최종 발표에서 빠져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기업의 지불능력이 다시 포함될지 주목된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최종안을 발표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르면 28일 같은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핵심은 결정체계 이원화다. 기존의 최저임금위원회는 각각 9명인 노동계 인사와 경영계 인사, 정부 추천 공익위원(총 18명)으로 구성되는데 인상률을 더 높이자는 노동계와 속도조절론을 강조하는 경영계 사이에서 정부 추천 위원이 일종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 정부의 인상 기조가 강하면 최저임금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17년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2년 뒤인 올해 8350원으로 29.1% 뛰어올랐다. 개편안은 구간설정위에서 인상률 상·하한, 즉 결정위의 '심의구간'을 획정한 후 결정위가 최종 인상폭을 결정하도록 했다. 구간설정위는 노동계·경영계·정부에서 각각 5명씩 모두 15명의 전문가 후보를 추천하기로 했다.

위원 면면을 놓고 위원회가 파행하는 일을 막기 위해 노동계와 경영계에 각각 3명씩, 모두 6명의 후보를 배제하는 권한을 주기로 했다. 예컨대 노동계가 경영계 추천 인사 중 2명과 정부 추천 인사 중 1명 등 3명을 비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확정된 전문가 위원 9명은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찬성 기준으로 심의구간을 의결하게 된다.

이후 근로자위원 7명과 사용자위원 7명, 정부(3명)와 국회(4명) 추천 공익위원 7명으로 구성되는 결정위원회가 다음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같은 전국단위 노동단체가 추천하는 근로자위원과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가 추천하는 사용자위원에는 각각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 중소·중견기업·소상공인 대표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최저임금은 작년까지 3월 말에 고용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에 심의를 요청하면 4월부터 7월까지 위원회가 논의해 결정하고, 8월 5일 안으로 정부가 관보에 고시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새 제도 시행으로 올해는 결정 시기가 예년보다 두 달가량 늦어질 전망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는 대로 전문가를 위촉하고 새롭게 추가된 결정기준에 맞춰 심의할 근거자료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준비기간 때문이다. 올해에 한해 최저임금 결정시한을 10월 전후로 늦추는 방안을 정부가 국회에 요청할 예정이다.

결정체계 이원화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 특유의 새로운 실험이지만 최저임금 속도 조절을 위해 필요한 장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부가 이날 내놓은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기준은 근로자의 생계비, 소득분배율,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등 4가지로 경제 상황과 기업의 부담을 고려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에도 부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가 초안에서 기업의 지불능력과 고용 수준, 경제성장률 포함 경제 상황 등을 새 기준으로 제시한 이유다. 정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새로운 결정기준으로 가장 우선돼야 할 지표로 임금 수준(54.3%)에 이어 기업의 지불능력(41.5%)을 두 번째로 지목했다.

하지만 전문가 토론회에서 기업의 지불능력을 지표화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고 노동계에서 '사업주 무능력에 따른 경영난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셈'이라고 반대하면서 최종안에서는 빠졌다.

임서정 차관은 "(기업의 지불능력은) 결과적으로는 고용의 증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고용에 미치는 영향 기준으로 보완될 수 있고, 기업의 지불능력을 보여주는 영업이익 등 지표는 경제 상황 지표와 중첩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제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27일 성명에서 "기업의 지불능력을 고려하는 것이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의 핵심이었다"며 "이제 와서 슬그머니 말을 뒤집은 고용부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성토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기업의 지불능력이 반드시 산입돼야 이를 바탕으로 업종별, 기업 규모별 등 차등화 근거로 삼을 수 있다"면서 "고용부는 지금이라도 기업의 지불능력 산입과 최저임금 차등화 방안에 대해 전향적 자세를 보일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협회 등 경제단체도 공동성명에서 결정기준에 '기업의 지불능력'이 포함돼야 한다고 성토했다.

또 경제단체들은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이후 정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위원회가 결정한 최저임금안에 대한 정부의 검토 의견 제시를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면서 "향후 최저임금 수준이 안정화하면 중장기적으로 프랑스·독일과 같이 '산식'에 의한 최저임금 결정 방식의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찬동 기자 / 정석우 기자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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