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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갑자기 업무 바꾸거나 정당한 성과 인정 안하면? "직장내 괴롭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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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7월 법 시행

병가 못 쓰게 하거나 회식 강요, 괴롭힘 인정

개인사 뒷담화하거나 업무 정보 제공 안 해도

#은퇴자 김종현(가명)씨는 퇴직 전 회사에서 당한 수모가 떠오를 때마다 화가 난다. 출근해 보니 책상 위에 있던 개인용 컴퓨터가 사라졌다. 상사는 "아무런 일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며칠 후 책상은 벽 바로 앞으로 옮겨졌다. 김씨는 한 달가량 '면벽 근무'를 했다. 스스로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김씨에게 원래 하던 업무가 아니라 보조 업무 같은 것을 부여했다면 어떻게 될까. 퇴사 압박용이거나 '왕따'할 의도가 있었다면 이 또한 괴롭힘에 해당한다.

#의류회사의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특정 신상품의 디자인을 맡긴 뒤 계속 수정을 요구했다. 업무 스트레스를 받은 직원은 괴롭힘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고용부는 "이는 상사가 가진 업무상 적정성을 넘어섰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독려와 지시를 할 수 있고, 이는 직위에 합당한 권한 행사라는 얘기다.

다만 특정 근로자에게만 모두가 꺼려하는 업무를 반복적으로 시킨다면 괴롭힘으로 판정받을 수 있다. 그 업무가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고용부는 21일 이런 내용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 판단·대응 매뉴얼'을 발표했다. 오는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이 발효되는 데 따른 선제 조치다. 그러나 행위의 의도와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산업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혼란이 있을 전망이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매뉴얼은 이를 인용해 '괴롭힘의 발생 장소가 사업장 안이 아니라도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사내 메신저나, 사회관계망(SNS) 같은 온라인에서의 벌어지는 일도 포함된다는 의미다.

고용부가 제시한 괴롭힘의 유형은 다양하다. 폭력이나 욕설, 모욕적 발언, 집단 따돌림은 당연히 괴롭힘에 해당한다. 여기에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 성과를 조롱하는 행동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봤다. 훈련·승진·보상 등에서 차별하거나 업무 관련 중요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경우 '정당한 이유'를 두고 해석이 다를 수 있고, 중요 정보인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게 논란거리다.

▶정당한 이유 없이 휴가·병가는 물론 각종 복지혜택을 못 쓰게 압력을 가하는 행위 ▶음주·흡연·회식 참여를 강요하는 행위 ▶사적 심부름 같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일을 반복적으로 지시하는 것도 괴롭힘으로 분류된다.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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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대표이사(최고경영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일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괴롭힘을 신고해야 할 당사자가 행위자인 셈이다.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그래서 고용부는 감사가 회사 비용으로 조사한 뒤 이사회에 보고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직장 내 괴릅힘을 이유로 별도로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다른 법으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고, 형사처벌 할 수 있다. 상사의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우울증에 걸린 근로자가 상사를 고소해 법원이 상해죄로 처벌한 판례가 있다. 명예훼손죄도 가능하다. 괴롭힘이 성차별에 해당한다면 남녀고용평등법이 우선 적용된다. 그러나 당사자가 증거를 직접 수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각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과 발생 시 조치에 관한 내용을 취업규칙에 담아야 한다.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최태호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게 피해 신고를 이유로 해고 등의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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