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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성추행 폭로 최영미 "몸사리는 원로들 이해한다, 나도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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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고은 시인, 최영미 시인. [중앙포토,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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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86)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이 18일 "소송이 걸린 뒤 내가 질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문단의 어른들이 나서주지 않아서 힘들었지만, 그분들의 몸사림이 이해는 된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문단의 원로들이 나서주지 않아 힘들었다고 하던데'라는 질문에 "이해는 간다. 괜히 정의감에 나섰다가 불이익을 당할 게 뻔하니까. 나도 소송 걸리기 전까지는 'EN 시인'이라고 했지 그의 실명을 확인해 주지 못했다. 나도 시는 썼지만 겁이 나서"라고 말했다.

최 시인은 "문인이나 예술가들이 자유로운 직업이고 자유로운 사람들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문인들도 하나의 직업이고 그 세계에서 최정점에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권력이 두려웠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 시인은 2017년 한 계간지에 '괴물'이라는 제목의 시를 실으며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고 시인을 암시하는 글이었다.

이어 최 시인은 한 일간지를 통해 "1994년 늦봄 서울 종로구의 한 술집에서 고은 시인의 '추태'를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1994년 당시 상황에 대해 최 시인은 "나는 그때 너무 놀라서 그냥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너무 놀라서 '헉' 이러고 있는 거다. 보통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나"라고 회상했다.

최 시인은 1994년 당시 함께 있었던 증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 시인은 "당시 목격자를 찾아야 하는데 20년 전에 같이 어울린 문인들 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더라 겨우 수소문해서 한 분이 증언을 해줬다. 그런데 막상 법정에 나와서는 진술을 번복했다"고 밝혔다.

최 시인의 일기가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자 고은 시인 명예회복대책위가 "여론 재판이었다"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선 "여론 재판은 무슨, 법이 살려준 줄 알라고 하라"고 맞섰다.

그러면서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역고소하는 일은 정말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고소하면 다른 피해자들이 누가 나서서 증언을 하겠나. 모든 피해자들이 침묵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토로했다.

한편 고은 시인 측은 최 시인의 폭로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라"고 맞섰다.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으나 지난 15일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이상윤)는 15일 고 시인이 최 시인과 박 시인,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10억7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공판에서 최 시인과 언론사에 대한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박 시인은 고 시인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홍수민 기자 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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