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물 맞춰 쌀을 안친다
안친다는 건 쌀이 걸어온 길에 대해 묻고 이해하는 일
그가 맞은 햇볕과 비와 바람의 질량을 가늠하는 일
그가 걸어온 길을 손금으로 들이는 일
가래 끓는 가슴으로 밑동부터 잡아 일으킨 한 사람의 생과
그늘과 양지와 대지의 사연을 듣는 일
뿌리의 말을 다듬고 솟는 줄기의 힘을 만지고 낱알 영그는 노고를 집에 들이는 일
주저앉는 등허리와 기울어 가는 서까래의 늙음에
고스란히 심장 박수 맞추는 일
쌀뜨물처럼 저녁이 오고
손등으로 깊이를 가늠한다
그리하여
고슬고슬한 당신과 나란히 밥상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꼭꼭 씹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저녁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말하자면 오늘 당신의 저녁 식탁 위에 오른 된장찌개 속의 호박과 두부, 고등어와 무, 콩나물과 김이 "걸어온 길"과, 그 속에 맺힌 "그늘과 양지와 대지의 사연" 그리고 "주저앉는 등허리와 기울어 가는 서까래의 늙음"에 대해 잠시라도 고개를 숙여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매일 입는 옷과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와 출퇴근할 때마다 지나다니는 길에는 모두 무수한 "사람의 생"과 숱한 "노고"가 깃들어 있다. "뿌리의 말"을 향하고 있는 이 시는 생각보다 급진적이며 다분히 정치적이다. 채상우 시인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