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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이혁의 눈] "아니면 말고.." 무고죄의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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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죄 급증하지만 입증하기 어려워 발생 건수에 비해 기소율 낮아
일·명예 등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목숨까지 앗아가지만 처벌은 미미한 수준
무고죄, 초범이라도 강력하게 처벌하고 경각심 높여야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라더라"

영화 해바라기 대사의 일부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죄를 짓지 않아도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허위 신고가 남발되면서 긴 소송 끝에 무죄를 받아도 남는 건 아무것도 없고, 모른 것을 잃을 뿐만 아니라 후유증도 크다.

이런 현상 때문에 최근에는 무고죄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무고죄란, 남을 징계 혹은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해 허위 사실을 신고하는 죄를 말하며 형법 제156조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무고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독일은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 프랑스는 5년 이하의 구금형 및 4만 5000유로(약 5,703만원)의 벌금, 영국은 6개월 이하의 즉결심판이나 벌금에 비하면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받는 처벌은 미약하다. 이에 무고죄에 대한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5월에는 무고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파이낸셜뉴스

무고죄가 급증하고 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양형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사진=프리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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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쪽 말만 믿으며 헐뜯고 비난.. 진실 밝혀져도 벌금은 고작 '30만원'

3년 전 트위터에 익명으로 27세 여름에 박진성 시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 글이 올라왔다. 폭로 글은 커뮤니티를 통해 무차별 확산됐다. 관련 기사 및 글에는 “죽어라”, “역겹다”, “더러운 놈” 등 누리꾼들의 비난 댓글이 이어졌다. 폭로 글 게재 후 박진성 시인은 해명할 틈도 없이 강간범이 됐다.

이로 인해 박진성 시인의 시집은 서점에서 사라졌고, 출간 예정인 책 4권도 계약이 해지됐다. 시 수업 수강생도 모두 떠났으며, 우울증 약을 먹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후 성폭행 폭로 글은 거짓임이 밝혀졌고, 박진성 시인은 무혐의를 인정받았지만 모든 것을 잃었다. 폭로 글을 썼던 여성은 박진성 시인이 무고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사과 메시지 보냈다. 죄송하다는 말 뒤에는 ‘소송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검찰이 여성에게 내린 처분은 고작 벌금 30만원으로 박진성 시인이 그동안 받았던 고통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첫 출근하는 길에 특수 강간 용의자로 체포된 엄친아 A씨. 성폭행 피해자는 17살의 B씨였다. B씨의 말에 의하면 둘은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만났고, 강제로 모텔촌으로 끌려가 몹쓸 짓을 당했으며, 임신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A씨는 B씨를 모른다고 결백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B씨의 핸드폰에 A씨와의 통화 내역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로 A씨는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고, 약혼녀와도 헤어지게 됐으며, 동네에서도 파렴치한 범으로 매도됐다.

그러나 1년 뒤 반전이 일어났다. A씨는 성폭행범이 아니었으며, 범인은 놀랍게도 피해자였던 B씨였다. 빈집털이범으로 경찰에 수배 중이었던 B씨는 A씨를 만나기 전에 이미 임신 중이었고, 훔친 휴대폰에서 A씨 사진을 보고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B씨는 A씨 이름을 묻고 전화를 끊어버렸고, A씨가 다시 B씨에서 전화를 걸어 통화기록이 남게 된 것이었다.

B씨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A씨 구치소에서 한 달간 지냈으며 무혐의로 결론났지만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이 망가졌다.

■ 매년 급증하는 무고죄, 처벌하기 어려운 이유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2007~2016년) 동안 무고죄 비율은 해마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고죄는 2007년 3,274건 (기소 2,171명·기소율 47.4%) 시작으로 ▲2008년 3,377건 (기소 2,539명·기소율 49.7%) ▲2009년 3,580건 (기소 2,799명·기소율 47.4%) ▲2010년 3,333건 (기소 612명·기소율 18.8%) ▲2011년 4,374건 (기소 1,982명·기소율 43.0%) ▲2012년 4,682건 (기소 2,037명·기소율 37.6%)으로 꾸준히 증가하다가 2013년 4,372건 (기소 1,521명·기소율 31.4%) 잠시 주춤했다.

2014년 4,859건 (기소 1,732명·기소율 31.1%)으로 다시 수치가 올라가더니 ▲2015년 5,386건 (기소 1,985명·기소율 35.3%) ▲2016년 5,560건 (기소 1,857명·기소율 31.2%)으로 집계됐다.

무고죄 발생 건수에 비해 기소율이 낮은 이유는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고소·고발을 당한 사건에서 무혐의나 무죄를 받아도 무고죄가 곧바로 성립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피해자가 정황을 다소 과장하거나, 일부 허위 사실을 주장했다 하더라도 범죄 사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법원은 무고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무고죄는 자발성을 요건으로 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요청으로 신문을 받던 중 사실을 부풀려 말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경우에도 해당이 안 된다. 허위사실을 진실로 잘못 알고 신고했는데, 무혐의로 밝혀졌을 때도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무고죄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고죄는 어떤 경우에 성립할까?

무고죄의 핵심은 ‘허위 사실’의 신고가 있어야 한다. 허위 사실이란 타인이 법적 처분을 받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로 고의성이 있어야 한다. 본인이 허위사실을 고한다는 확실한 인식과 고의가 분명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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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죄는 입증하기 어려워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무고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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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고죄, 형량 기준보다 낮게 처벌.. 경각심 갖고 제도 개선해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무고죄의 형량 기준은 일반 무고와 특가법상 무고로 나누어 결정된다. 일반 무고는 기본적으로 6월~2년의 형을 받으며, 감경 시 1년 이하, 가중처벌 시 4년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특가법상 무고는 기본적으로 2~4년의 형을 받고, 감경 시 3년 이하, 가중처벌 시 3~6년의 처벌을 받는다.

무고죄는 ▲경합범 아닌 반복적 고소 ▲중한 피해 결과 야기 ▲피지휘자에 대한 교사 ▲동종 누범(증거 인멸, 범인 은닉, 위증 등 포함) ▲수개의 허위사실 적시 ▲이종 누범, 누범에 해당하지 않는 동종 전과 (증거 인멸, 범인 은닉, 위증 등 포함)가 있을 경우에는 형량이 높아진다.

반대로 ▲타인의 강압이나 위협 등에 의한 범행 가담 ▲피무고자의 승낙이 있는 경우 ▲농아자 ▲심신미약 ▲자수·자백 ▲소극 가담 ▲참작할 만한 범행 동기 ▲진지한 반성 ▲처벌불원(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포함) ▲형사처분 전력이 없으면 감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무고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지 않고, 실제로 법원에서도 기준 형량보다 낮게 판결한다. 이에 허위 신고가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죄 혹은 무혐의를 받아도 의미가 없다. 당사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회생 불가능한 수준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누명을 씌우고, 한 사람의 일과 명예까지 빼앗고, 최악의 경우 생명까지 앗아가는 무고죄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초범이라 하더라도 강력하게 처벌하는 등 양형 기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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