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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고은 시인 성추행' 진실 공방… 법원은 최영미 손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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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 구체적이며 일관… 믿을만" 10억 손배訴 낸 고은 패소 판결

조선일보

고은 시인(왼쪽), 최영미 시인


고은(86) 시인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최영미 시인과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5일 패소했다. 두 사람은 성추행 의혹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였는데 법원이 "성추행은 사실"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원로 시인인 고은은 그동안 "나 자신과 아내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다"고 해왔다.

이 사건은 최 시인이 2017년 말 계간지에 발표한 '괴물'이라는 시를 통해 불거졌다. 그 시에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중략)/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은 시인을 암시한 이 시는 지난해 2월 언론을 통해 알려져 미투 운동 확산의 계기가 됐다.

최 시인은 한 일간지를 통해 고은이 1992~1994년 술집에서 바지 지퍼를 열고 다른 여성에게 신체 특정 부위를 만져 달라고 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박진성 시인도 고은이 2008년 한 술자리에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을 언론에 제보했다. 이후 고은은 허위 사실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최영미·박진성 시인과 언론사를 상대로 총 10억7000만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선 성추행을 부인하는 고은 시인 측과 "직접 본 일"이라는 최 시인 등의 입장이 맞섰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이상윤)는 "최 시인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특별히 허위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최 시인의 증언은 직접 목격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여 믿을 만하다고 했다. 또 그가 고은이 술집에서 바지 지퍼를 내렸다고 한 시기를 1992~1994년이라고 한 것도 신빙성이 높다고 했다. 그가 나중에 법정에 제출한 일기장에도 관련 내용이 '1994년 봄'이라고 특정돼 있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최 시인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명예훼손 책임이 문제될 수는 있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공익적 사안이고 그 내용이 진실하기 때문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추가 폭로를 했던 박진성 시인에 대해서는 10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 시인이 건강이 좋지 않다며 법정에 나오지 않아 검증 기회가 없었던 반면, (폭로 내용을 반박하는) 고은 시인 측 증인들 말은 구체적이었다"고 했다.

선고 직후 최 시인은 입장문을 통해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뻔뻔스레 고소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된다"고 했다. 또 고은 시인을 옹호한 문인들을 겨냥해 "진실을 은폐하는 데 앞장선 사람들은 반성하기 바란다"고 했다.

앞서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 제기 이후 한국작가회의의 미온적 대처가 논란이 된 바 있다. 작가회의는 성추행 의혹 제기 이후 2주가 지나서야 "회원인 고은의 징계안을 상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고은은 작가회의 상임고문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징계를 피했다. 이 때문에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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