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씨가 낸 의혹폭로 손배소송 1심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목격했다고 폭로해 소송을 당한 최영미 시인이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고은 시인(86)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58)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1심에서 15일 패소했다. 지난해 2월 최 시인이 폭로한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법원이 1년 만에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 “일기장, 조작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이상윤)는 이날 고 시인이 최 시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최 시인은 지난해 2월 동아일보에 1000자 분량의 글을 보내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서울 종로구의 한 술집에서 고 시인의 성추행을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재판부는 “최 시인의 글 내용과 법정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제보한 동기와 경위 등을 따져보면 허위라 의심할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최 시인이 증거로 제출한 1994년 6월 2일 일기장이 조작됐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광기인가 치기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오기인가-고 선생 대(對) 술자리 난장판을 생각하며’라고 써있는 일기장을, 성추행을 목격한 최 시인이 괴로워한 증거라고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최 시인은 이 일기장을 지인의 은행 금고에 보관하다가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최 시인이 성추행 목격 시기를 1994년 늦봄으로 뒤늦게 구체화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약 25년이란 시간의 경과로 인한 인간 기억력의 한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고 시인 측 증인들이 허위 증언을 했다는 최 시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고 시인과 최 시인이 주점에 있었던 횟수가 두 번뿐이라는 것을 제3자인 (증인) A 씨가 기억한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 최 시인 “나 같은 피해자 없었으면”
최 시인은 판결 직후 동아일보와 만나 2017년 12월 시 ‘괴물’을 통해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익명으로 폭로한 뒤 1년 2개월간 느꼈던 부담감에 대해 털어놨다. 최 시인은 “한국 문단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의 성추행을 글로 썼을 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7월 고 시인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뒤엔 “타인의 송사에 개입하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입을 열게 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최 시인은 “그러나 후세대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들을 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나 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 시인의 변호를 맡은 여성변호사회는 “피해자가 피해를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가해자가 스스럼없이 잘못을 부인하고 이를 옹호하는 분위기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고은 시인 명예회복대책위’는 “최 시인의 편을 든 여론재판”이라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 고 시인에게 배상책임 없어
재판부는 고 시인의 1994년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동아일보가 고 시인에게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최 시인이 성추행이 벌어진 시기, 장소, 구체적인 말과 행동, 사건 후 정황에 대해 취재기자에게 구체적으로 진술해 이를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 시인이 2008년 지방의 한 대학 초청 강연회에서 대학원생을 성추행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배상책임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고 시인의 2008년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박진성 시인(41)에 대해 “피해 여성을 특정하지 못했다”며 고 시인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예지·이지훈 기자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