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이상윤 부장판사)는 15일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과 박진성 시인,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박진성 시인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고은 시인 |
재판부는 당사자들의 주장과 증인들의 진술, 최영미 시인의 일기 등 증거를 검토한 결과 최영미 시인이 “1994년 한 주점에서 고은 시인이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폭로한 내용은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영미 시인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제보한 동기와 경위 등을 따져보면 허위라 의심할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당시 최 시인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고, 주변 사람들 사이에 고 시인의 기행을 어느 정도 묵인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날 사건 이후 최 시인이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술자리에 합석하거나 통화하는 등 관계를 유지했다고 해서 진술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언론사와 기자들도 “공공 이해에 관한 사안”이라며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박진성 시인이 “2008년 한 술자리에서 고은 시인이 동석한 20대 여성을 상대로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한 내용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진성씨가 법정에 나오지 않고 진술서만 제출했는데, 당시 동석한 여성을 특정하지 못했다”며 “허위 주장으로 원고가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고 정신적 고통을 받은 점, 블로그에 올린 내용과 표현방법 등을 고려하면 원고가 청구한 금액 1000만원을 전부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은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에서 원로 문인의 과거 성추행 행적을 고발한 사실이 지난해 2월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시 ‘괴물’은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라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최영미 시인은 직접 방송 뉴스에 출연해 원로 시인의 성추행이 상습적이었다고 밝혔고,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는 그가 술집에서 바지 지퍼를 열고 신체 특정 부위를 만져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는 박진성 시인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최영미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며 다른 성추행 의혹을 추가로 주장했다. 이런 주장들은 언론에도 보도됐다.
고은 시인은 이런 의혹을 부인하며 10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았지만 이날 판결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 차례 오르며 한국 문단의 거두로 꼽힌 고은 시인은 치명적인 불명예를 안게 됐다.
법원의 선고 후 최영미 시인은 입장문을 통해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뻔뻔스럽게 고소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된다”며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반면 ‘고은 시인 명예회복 대책위’는 “사필귀정의 올바른 판결을 기대했지만 법원은 일방적으로 최영미의 편을 들어 판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실이 아닌 풍문만으로 고은 문학을 테러한 최영미 주장의 허구성이 2심에서 올곧게 바로잡아지길 기대한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배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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