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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화장품 싹쓸이 쇼핑? 깃발 든 유커 행렬 뚝 끊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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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상가 중국 춘절대목에도 썰렁

상점 30곳 중 21곳 “작년보다 못해”

붉은 간판 내걸고 “환영” 외쳐도

1시간 동안 중국 관광객 한 명 없어

한국 대신 일본·동남아 더 찾아

중앙일보

지난 7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중국 관광객들이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음식을 사먹고 있다. 상인들은 "지난해 춘절보다 관광객이 줄었다"고 말했다. [윤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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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가게. 입구엔 중국인이 좋아하는 붉은색 간판에 ‘춘절 특가(春节 特价)’란 홍보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가게 직원이 쉴 새 없이 큰 소리로 “환잉광린(欢迎光临·‘어서 오세요’의 중국말)”이라고 외쳤지만, 가게로 들어가는 중국 관광객은 1시간 동안 한 명도 없었다. 3년째 이 가게에서 일한 직원 김모(25)씨는 “4~10일이 중국 최대 연휴라는 춘절인데 중국 단체 관광객 발길이 뚝 끊긴 것 같다”며 “수십명이 들러 보따리 가득 화장품을 쓸어담는 풍경은 춘절 연휴 동안 한 번도 못 봤다”고 말했다.

‘춘절(春節) 특수’가 실종되다시피 했다. 이른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파가 여전해서다. 중앙일보가 춘절 특수를 누려온 대표 상권인 명동의 화장품·옷가게, 환전소, 음식점 등 30곳을 지난 7~10일 현장 점검한 결과 26곳이 “춘절 특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춘절은 중국인 관광객 추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명동의 한 식당 주인 한모(48)씨는 “사드 한파 직격탄을 맞은 지난해부터 춘절 특수는 옛말이 됐다”며 “저녁 피크 타임 빼곤 중국인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영남(63) 탑환전 명동본점 대표는 “춘절 때면 환전소 앞에 중국인 관광객이 장사진을 쳤지만 요즘은 한 시간에 한 명 찾는 것도 감지덕지”라고 털어놨다.

구체적으로 30곳 중 21곳(70%)이 지난해 춘절보다 중국인 관광객이 “줄었다” 또는 “많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비슷하다”는 6곳, 나머지 3곳은 “단순 비교가 힘들다”고 답했다. 한·중 관계가 ‘해빙 무드’에 접어들었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중국 관광객 숫자가 회복됐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응답한 경우는 한 곳도 없었다. 기념품 가게 직원 김민주(22)씨는 “중국이 ‘한한령(限韓令·한국 단체관광 금지령)’을 해제했다는 소식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드러난 수치만 보면 사드 한파가 주춤한 건 맞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은 2016년 807만명에서 2017년 416만명으로 반 토막 났다. 그런데 지난해는 478만명이 한국을 찾아 회복세란 진단이 나온다. 류한순 관광공사 중국팀 차장은 “중국인 관광객은 여전히 한국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관광지로 여긴다”며 “올해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성사되고 한·중 관계가 나아지면 회복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직 관광객 숫자가 절정보다 한참 못 미치는 데다, 관광지로서 한국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게 문제다. 11일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에 따르면 올해 춘절 연휴 동안 700만명의 유커가 해외여행을 떠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춘절 대비 8%가량 늘었다. 그런데 한국은 2년째 선호 여행지 ‘톱10’에서 벗어났다. 일본이 1위를 차지했고 태국·싱가포르·미국·말레이시아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가까운 여행지인데도 외면한 셈이다.

더 큰 걱정은 단체 관광객 발길이 뜸해졌다는 점이다. 관광업계에선 여행사를 통한 단체 관광객이 전체 중국인 관광객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본다. 명동에서 일하는 직장인 안진영(40)씨는 “몇 년 전만 해도 길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던 빨간색 중국 단체 관광객 안내 깃발을 지난해부터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 왕웨이(王伟·24)는 “사드 여파로 한국에 대한 반감이 여전한 데다 딱히 한국이 나은 점을 모르겠다”며 “친구들끼리 ‘쇼핑하려면 한국에 가지만, 관광하려면 일본에 간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한령’은 한·중 관계 급변에 따라 언제든 나올 수 있는 ‘변수’인 만큼, 근본적인 관광 콘텐츠를 다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관광업계 ‘바가지’ 관행부터 개선하는 등 내부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환·윤상언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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