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빚 7000만원서 '박항서 신드롬'까지…그는 어떻게 베트남을 사로잡았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박항서 감독 베트남行 추진한 이동준 디제이매니지먼트 대표

구단·협회와 교류, 각종 민원 해결로 신뢰 쌓아

국내서 기회 막힌 선수와 지도자 해외 진출 관심

아시아경제

이동준 디제이매니지먼트 겸 인스파이어드아시안매니지먼트 대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지난달 26일 베트남 하노이의 항더이 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울산 현대와 베트남 22세 이하(U-22) 축구대표팀의 친선경기. 이 경기를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지휘하는 박항서 감독이 지켜봤다. 박 감독은 8강에서 도전을 멈춘 베트남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일정을 마친 뒤 비행기 시간 때문에 친선경기에 도착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를 주선한 이동준 디제이매니지먼트 겸 인스파이어드아시안매니지먼트 대표(사진)가 바쁘게 움직였다. 후원사를 위한 깜짝 선물로 박 감독을 경기장에 등장시키기 위해 박 감독과 대표팀이 경유지 태국에서 타기로 한 비행기 시간을 바꿔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대표는 "베트남 축구협회에 부탁을 해 베트남 국토교통부 장관 산하의 해당 팀과 논의를 했다. '비행 시간은 못 바꾸지만 먼저 출발하는 비행기를 좀 더 큰 것으로 교체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38석이 확보된 비행기를 타고 박 감독이 시간에 맞춰 경기장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베트남 내 위상을 상징하는 일화다.


이 대표는 박 감독의 '베트남 신드롬'을 설계했다. 베트남 축구협회에 박 감독을 추천한 에이전트다. 박 감독이 베트남의 국민영웅으로 떠오르면서 우리 지도자의 수출도 활발해졌다. 베트남 프로축구팀 사령탑으로 연달아 진출한 정해성, 이흥실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의 이적 계약 모두 이 대표의 작품이다. K리그에 입단하는 베트남 선수뿐 아니라 북한 대표팀 사령탑을 거쳐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에 자리 잡은 욘 안데르센 감독(노르웨이)도 그의 손을 거쳤다.


이 대표의 매니지먼트 사업은 시작이 초라했다. "초창기 빚이 7000만원에 동업자들과 모아 놓은 자본금도 대부분 소진하고 수중에 현금 60만원이 전부였어요. 어렵게 해외 구단과 비즈니스 기회를 얻었는데 항공편은 물론 식사 대접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죠."


아시아경제

이 대표의 추천을 통해 베트남 국민영웅으로 등극한 박항서 감독[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3년의 일이다. 지인 소개로 중국 프로축구단의 단장 등 고위급 임원을 통해 우리 선수 영입을 요청할 때다. 이 대표는 "비용은 그쪽에서 모두 부담하는 조건으로 경기장 입장권 구매, 숙소 예약, 교통편 등 모든 서비스를 대행해줬다. 선수 정보를 담은 용지의 출력 비용도 부담돼 프린터기를 챙겨 지방까지 이동했다. 재벌 3세인 구단 단장이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 '어떤 일이든 꼭 맡겨주겠다'고 약속하더니 진짜로 트레이너와 선수 이적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 이적에 집중하기보다 구단이나 협회와 교류하면서 전지훈련 대행, 친선경기 추진 등의 업무를 처리했다. 여기에 마케팅 방안까지 곁들여 신뢰를 쌓았다. 대다수 에이전트가 주목하지 않던 동남아시아 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러한 업무로 도움을 주고받을 기회가 많다고 판단해서다. 이렇게 형성한 신뢰를 바탕으로 지도자와 선수를 현지에 추천할 권한을 확보했다. 박 감독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베트남에 갔다. 이 대표는 "(베트남)대표팀 감독이라 어느 정도 파급력은 기대했지만 이 정도의 성공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태권도 전문선수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 다리를 다쳐 운동을 그만두고 미래를 고민했다. 회화 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익혔고 스포츠 매니지먼트에 매력을 느껴 국제축구연맹(FIFA) 에이전트 자격시험도 취득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입사해 스포츠마케팅 실무를 현장에서 담당한 경험도 있다.


그는 국내에서 기회가 막힌 선수나 지도자의 해외 진출을 돕는데 관심이 크다. 말레이시아에서 운영하는 독립구단 'FC아브닐' 사업도 이와 연관이 있다. 현지 대학과 연계해 고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 선수들까지 저렴한 학비에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고 독립구단에서 축구를 계속하면서 동남아나 유럽 하부리그 팀 입단을 타진하는 방식이다. "아브닐은 프랑스어로 '미래'를 뜻합니다. 안 되는 게 아니라 방법을 못 찾아 고민하는 이들에게 스포츠를 통한 비전을 주고 싶습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