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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마약반 형사, 정말로 열정 없이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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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 감수 서울경찰청 김석환 경감

단속 위해선 잠복이 대부분…몸싸움 잦아 팀원 대부분 유단자

출장 많고 밤낮 없이 근무…마약, 호기심에 손댔다가는 파멸

경향신문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1팀 김석환 경감.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실적 부진으로 해체 위기에 놓인 서울 마포경찰서 마약수사팀에 갓 출소한 마약계 거물이 활동을 개시했다는 ‘첩보’가 접수된다. 이들은 범죄조직의 아지트 앞 치킨집을 인수해 24시간 잠복수사에 나선다.

파리만 날리던 치킨집이 갑자기 ‘유명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지난 9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극한직업> 이야기다. 현실의 마약·잠복수사는 어떨까.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1팀 팀장인 김석환 경감(53)은 2000년 각 지방경찰청에 마약수사계가 설치될 때부터 활약한 베테랑이다. 2005년 ‘국내 제1호 마약전문수사관’으로도 뽑힌 그는 <극한직업> 감수를 맡았다.

올해로 14년째 마약 수사 업무를 담당한 김 경감에게 영화와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10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마약수사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일요일에도 출근하느냐”는 인사말에 “원래 마약반이 일이 많다”며 넉살 좋게 웃었다. 시간이 없어 <극한직업>도 못 봤다고 한다.

- 위장 창업이 현실에서도 가능한가.

“작가분들이 현실을 잘 응용하신 것 같다. 배달원이나 퀵기사, 가스검침원 등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

- 잠복수사 비중이 높다고 하던데.

“잠복이 대부분이다. 현실에서는 첩보를 입수하고, 인적사항이나 소재, 주거지 등을 미리 수사한다. 이를 통해 마약사범이 이동하는 경로나 자주 가는 곳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다음 검거 단계로 들어간다.”

- 잠복수사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팀워크다. 마약사범은 야간이나 인적 드문 곳에서 주로 활동하고, 흉기를 소지한 경우도 있다. 혼자 움직이면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잠복 중인 직원들끼리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행동 사인을 맞춰 동시에 검거를 진행해야 한다.”

- 몸싸움은 잦나. 영화에서는 “조폭은 타이르면 말을 듣지만 마약범은 눈이 돌아 덤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많다. 마약중독자는 정신병을 앓는 환자랑 비슷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수사관이나 마약사범 모두 투약자들을 ‘환자’라는 은어로 부른다.) 평상시 그 사람이 가진 힘보다 더 세게 발휘하는 경우도 있고, ‘상대방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환청이나 환각을 듣기도 한다. 멀쩡히 경찰 조사를 받다가 갑자기 자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곳 사무실도 평범해 보이지만 각자 형사들 서랍에는 호신용 무기 하나씩 쟁여져 있다.”

- 마약반 형사들이 몸싸움을 잘하는 편인가.

“직원들은 대부분 다 운동 유단자다. (김 경감도 대학에서 태권도를 전공했다.) 사람을 제압하려면 손목이나 팔 힘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약계 수사관들은 사진이나 인상착의만 보고 사람을 알아봐야 하니까 눈치도 빨라야 하고 순발력도 좋아야 한다.”

- 기억에 남는 잠복이 있다면.

“제가 인상이 이렇다 보니까…(웃음). 2000년대 초반쯤 조직폭력배로 가장해서 마약 판매상 검거에 성공했던 적이 있었다. (무섭지는 않았나?) 그때는 운동을 오래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은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까 얼굴이 많이 알려져 (가장이) 힘들다.”

김 경감은 또 하나 마약계 수사관들의 ‘주요 업무’가 있다고 했다. 마약 투약자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다. 환각이나 환청, 금단증상을 호소하는 실제 환자도 있지만 유치장에서 나가기 위해 꾀병을 부리는 가짜 환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별사람 다 있어요. 환장해요(웃음). ‘환자’가 아프다 그러면 병원도 데려가야 한다. 마약사범들이 유치장에 있으면 금단증상을 호소하고, 그러다 보니 향정신성의약품 성분이 들어간 정신과 약을 처방받기 위해 공황장애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병원에 안 데리고 갈 수는 없다.”

- 영화에서 고반장(류승룡)이 “오늘부터 퇴근 없다”는 대사를 하는데.

“(마약사범은) 야간이나 새벽에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시간에 우리도 일해야 한다. 전국 각지에 퍼져 있기 때문에 부산이나 대구 등지에 한 달씩 출장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수사관들 면접 볼 때도 이런 현실을 미리 설명해준다. 대화를 해보면 열의를 느낄 수 있다. 우리 팀 막내는 부천이 집인데, ‘안암오거리 사무실 옆으로 방을 얻어서 올 테니 받아 달라’고 했다. 그 정도 마음가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김 경감은 인터뷰 요청에 잠시 주저했다고 했다. 영화나 뉴스에서 마약 관련 소식이 자주 전해질수록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마약 투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마약 투여는 본인 몸을 망가뜨리는 일이지만 스스로는 잘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투약량도 늘고 금단현상도 심해진다. 가족들까지 힘들어지고 직장 생활도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다. 채팅앱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마약 구매에 대한 유혹이 늘어났지만, 호기심에 한번 손을 댔다가는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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