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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경향시선]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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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모아 강물을 받아요

그 물로 얼굴을 비벼요

물고기 냄새와 달빛 냄새가

나네요

아침 해가 강물에게 들려준

얘기를 느낄 수 있어요

손에서 얼굴 냄새가 나요

평생 화장수 한번

바르지 않았죠

슬픈 날은 얼굴에서

별 냄새가 나요

반짝반짝 흘러내리는 별

내 몸 어딘가 이리 많은 별이

있었다니 신비해요

별이 있어 세월 내내

행복했지요

별이 있어 해와 달도

외롭지 않았지요

슬플 때면 강으로 가요

쭈그리고 앉아

강물로 얼굴을 비벼요

얼굴이 환해지니

그리운 당신에게 갈 수 있어요

곽재구(1954~)

경향신문

깨끗한 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했으면 좋겠다. 물고기들의 집인 강물을 떠서. 초승달과 만월의 빛이 밤새 하얗게 내린 강물을 떠서.

그렇게 강물로 얼굴을 감쌌으면 한다. 슬픈 날엔 얼굴에서 별 냄새가 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외롭고 쓸쓸하고 어두운 시간과 장소에 별이 살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별은 스스로 빛을 모아 빛나면서 슬픔을 견뎌내기 때문일 테다.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도 강에 대해 노래했다. ‘물고기와 나’에서는 “물고기는 몸이 예쁘다/ 하루종일 물속에서 춤을 춘다”라고 썼고, ‘강물’에서는 “물을 보면 좋아요/ 종일 노래 불러요”라고 썼다. 강물에서 춤과 노래를 발견했다. 우리의 일상을 강물처럼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한다면 우리도 보다 다양한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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