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28일.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이자 생존자, 여성인권운동가, 식민지 조선과 분단 대한민국을 한 여성으로 살아냈던 김복동 할머니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셨습니다. 시민장으로 치러진 장례기간 내내 국내외 수많은 시민들이 찾아왔습니다. 광주에서, 전주에서, 춘천에서, 진천에서, 대구에서, 제주에서, 수원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대학생이, 고등학생이, 중학생이, 초등학생이, 회사원이, ‘그냥’ 학생이, ‘일반’ 시민이라고 밝히는 분들이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선생님이 학생들과 직장인들끼리 친구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수업 마치고 공부하다 저녁 퇴근 시간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꽃을 들고 편지를 들고 정성들여 만든 작품을 들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눈이 빨개지도록 오열하며 할머니를 뵈러 왔습니다.
평안하게 잠드세요, 현세의 고달픔 잊으시고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너무 늦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렇게 보내 드려 죄송합니다. 비통함과 진심 어린 애도의 마음 한편으로 할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이 컸나 봅니다. 그래도 나비모양의 쪽지에 빼곡히 메워지는 조문객들의 압도적인 감정은 존경과 감사, 새로운 세상을 향한 결심이었습니다. 용기 내 세상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용기와 행동에 저도 힘을 얻었습니다. 항상 잊지 않고 함께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저희가 열심히 싸우고 연대하겠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여성인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할머니가 어떤 길을 가셨는지,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마음으로 느끼고 상호 전이되던 감정의 중핵에는 새로운 희망과 다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추념을 넘어 결단의 감정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요. 왜 수많은 우리들은 김복동 할머니의 죽음에 유독 몸과 마음이 움직였던 걸까요.
고인(故人)이 1992년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밝힌 이후, 수많은 국내외 증언활동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를 ‘의제화’하고 여성인권에 관한 국제규범을 바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해 왔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내고 성폭력이란 용어조차 생경할 당시 떳떳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었던 용기, 일관되게 문제해결을 요구하던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 수많은 공격과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단호했던 목소리로 현실 비판과 평화를 향한 낙관적 전망을 잃지 않았던 생전의 행보에 대한 경외심 때문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말하는 증언자에 그치지 않고 다른 약자들과 피해자들에게 말 건네고 손 내미는 활동가로서의 실천이 나약하고 이기적이며 비겁한 우리를 흔들어 깨웠기 때문일 겁니다. 생존자로 자신을 드러낸 이후 그의 삶은 다른 이들을 돕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바쳐졌습니다. 나비기금을 만들고 콩고, 베트남, 팔레스타인, 우간다, 인도네시아 등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들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기여해 왔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 지진이 나면 앞장서 피해복구를 위해 기부하고 분쟁지역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거금을 쾌척하며 핍박받는 재일조선인 학교 아이들의 교육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병석에 계신 와중에도 베트남 전시 민간인 피해자들을 위한 위령제에 조화를 보내고 그 자녀들을 걱정하며 지원에 힘을 보태셨습니다. 생전에 아낌 없이 나누었던 그가 남긴 통장 잔액은 160만원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도, 행할 수도 없는 그 숭고한 정신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도 죄송했나 봅니다.
공식적인 장례절차는 2월1일 천안 망향의동산에서 엄수된 안장식과 2월3일 삼우제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의 정신은 다시 살아나 더 큰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와 비난, 좌절과 고통이 아니라 근본적인 세상의 변화를 위한 미래지향적인 실천 정신은 우리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시민들의 조의금은 여성, 인권, 평화, 노동, 통일 등 시민단체에 기부되었고, 활동가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분쟁지역 및 재일조선인 학교 아이들과 전시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다시 날려 올려질 수많은 희망나비가 온 세상을 덮을 때 비로소 고인은 편안히 영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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