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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하얀 코끼리`에 짓눌린 강원…"8600억쓰고 일회용시설 만든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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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올림픽 이후 1년 (下) ◆

매일경제

철조망 너머…멈춰 선 알파인 경기장 슬로프
평창동계올림픽 정선 알파인 경기장(정선군 북평면 가리왕산)이 존폐의 기로에서 1년째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산림·환경 당국은 전면 복원을, 강원도·정선군은 일부 시설 존치를 주장하며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갈등 국면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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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경기시설 사후 활용 문제가 1년이 되도록 해결되지 않아 강원도를 짓누르고 있다. 수천억 원을 들여 건설한 경기시설 상당수가 유지관리 비용만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10일 강원도에 따르면 평창올림픽은 모두 13개 경기장(신설 7개·보완 6개)으로 대회를 치렀다. 경기장 건설비용만 8675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용평 등 기존 리조트 시설을 제외한 8개 경기장 대부분이 1년째 방치되거나 단순 행사장으로 전락했고, 전혀 운영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유지관리비만 줄줄 새고 있다. 강원도는 올림픽 직후 입찰을 통해 지난해 4월부터 경기장 관리 용역을 맡겼다. 주요 경기장 4곳(아이스아레나·스피드스케이팅·강릉하키센터·슬라이딩센터)은 올해 1월까지 유지관리 비용만 11억6703만원이 지출됐다. 문제는 이런 적자 운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평창올림픽 개막 전부터 경기시설을 놓고 '하얀 코끼리(수익성이 없고 쓸모없는 투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됐다. 올림픽 이후 경기시설이 제대로 활용될지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동계스포츠 강국이 아닌 이상 수요가 뒷받침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위기감을 더욱 높였다. 그리고 1년이 흐른 지금, 이 같은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경기시설의 실상은 처참한 수준이다. 일부는 사후 활용 해법을 찾지 못해 방치되고 있는 것도 모자라 갈등을 유발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국유림 101㏊(가리왕산)에 사업비 1926억원을 들여 조성된 알파인 경기장은 존치와 복원의 갈림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리 주체가 없다 보니 시설 유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흉물로 전락했다.

당초 복원을 전제로 건설됐지만 올림픽 이후 강원도와 정선군이 곤돌라(5124㎡)와 운영도로(2만8272㎡)를 올림픽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존폐 논란이 불거졌다.

강원도가 2023년까지 국유림 용지 사용 허가 연장을 요청했지만 산림청이 이를 반려하고 '전면 복구' 이행 명령을 내리면서 갈등은 증폭됐다. 급기야 정선지역 161개 사회단체가 '경기장철거반대범군민투쟁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물리적 대응에 나서면서 화합과 평화를 내세웠던 올림픽 현장이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나머지 경기장도 상당수는 유지관리비만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슬라이딩센터는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폐쇄됐다. 스켈레톤 윤성빈의 주 무대였던 슬라이딩센터는 1143억원(국비 857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돼 신축됐다. 콘크리트를 압착 공기에 의해 스프레이처럼 분사하는 '숏크리트(Shotcrete)' 공법이 적용돼 '무결점 경기장'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결국 찬밥 신세가 됐다. 훈련 등을 유치하기 위한 수요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단기간 내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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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도 방치되고 있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 다음으로 가장 많은 건설비용(1261억원)이 투입됐지만 운영 수익은 전무하다.

슬라이딩센터와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등은 일반인이 이용하기 어려운 전문체육시설이어서 국비 지원 등이 필요하지만 진전이 없다. 올림픽 경기장 시설에 대해 국가 지원을 담보토록 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3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다른 경기장도 단순행사장으로 쓰이거나 스포츠대회 실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저조한 실정이다. 지난 1년간 강릉 아이스아레나의 운영 실적은 나훈아(지난해 10월 27일)와 김건모(올해 1월 26일) 등 콘서트가 2회 열린 게 전부였다. 1224억원을 들였는데 콘서트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109억원을 들여 조성된 강릉 쇼트트랙 보조경기장도 세계 청소년 마인드스포츠대회(지난해 8월 1~6일)와 강원권 전문대학 수시 및 입학정보 박람회(9월 7~8일)가 열린 것 외에는 운영 실적이 전무했다. 612억원으로 건설된 관동 하키센터 역시 강릉 학생 진로의 날 행사(지난해 8월 27~29일)와 학생 드론활용 아이디어 경진대회(지난해 12월 1일) 등 행사장으로만 쓰였다. 강릉 컬링센터도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 컬링선수권대회를 끝으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강릉 하키센터만이 지난해 말 전국종합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주니어 아이스하키리그, 전국아이스하키대회 등 각종 대회를 치렀다. 또 이달 9~12일 올림픽 1주년 기념 여자아이스하키 경기와 13~20일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등이 예정돼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개최도시의 재정 압박에 대한 우려도 또한 커지고 있다.

이미 2017년 한국산업전략연구원 용역 결과 경기장별로 연간 10억원대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마저도 경기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는 가정하에 산출된 비용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김형익 강릉상의회장은 "모든 것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며 "그러나 올림픽 경기장 사후활용의 경우 문제 해결을 위한 적기를 놓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 회장은 "국가 행사인 올림픽 뒷감당을 지역이 떠안고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정치권, 지역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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