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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인터뷰] 영화 <극한직업> 감수한 마약수사팀장에게 듣는 현실의 '마약잠복수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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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부진으로 해체 위기에 놓인 서울 마포경찰서 마약수사팀에게 갓 출소한 마약계 거물이 활동을 개시했다는 ‘첩보’가 접수된다. 이들은 범죄조직의 아지트 앞 치킨집을 인수해 24시간 잠복수사에 나선다. 파리만 날리던 치킨집이 갑자기 ‘유명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지난 9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극한직업> 이야기다.

현실의 마약·잠복수사는 어떨까. 2000년 각 지방 경찰청에 마약수사계가 설치됐을때부터 마약 수사에 뛰어들어 2005년 ‘국내 제1호 마약전문수사관’으로 선정되는 등, 올해로 14년째 마약 수사 업무를 담당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계 김석환 경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현재 마약수사1팀을 이끄는 김 경감은 <극한직업> 감수를 맡았다. 일요일인 1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마약수사대 사무실에서 만난 김 경감은 “일요일에도 출근을 하냐”는 인사말에 “원래 마약반이 일이 많다”며 넉살 좋게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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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1팀장 김석환 경감.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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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한직업> 봤나.

“못 봤다. 볼 시간이 없었다.”

-영화에서는 마약수사팀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하기 위해 치킨집을 인수하고 위장창업을 한다.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인가.

“작가분들이 영화적 설정에 맞게 현실을 잘 응용하신 것 같다. 실제 검거할 때도 경찰이 강제로 문을 열수가 없으니 배달원이나 택배기사, 오토바이 퀵기사, 가스검침원 등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에 걸쳐 위장 창업이나 취업을 하는 경우는 없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수사기법에 따라 다른데 보통 한 장소에 오래 있으면 노출이 되기 때문에 길게 잠복은 못 한다. 마약사범이 이동하는 시간대와 경로를 미리 분석한 후에 잠복에 들어간다. 또 주변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은 보복 우려가 있기 때문에 수사에 쉽게 협조해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도움 주는 분도 있었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더라.”

-마약수사에서 잠복수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고 하던데.

“잠복이 대부분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첩보를 입수하고, 인적사항이나 소재, 주거지 등을 미리 수사한다. 이를 통해 마약사범이 이동하는 경로나 자주가는 곳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다음 검거 단계로 들어간다.” (경찰청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경찰 마약수사전담팀 업무량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마약류 사건을 처리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업무는 외근에 의한 탐문·감시로, 피의자 1명을 검거하기까지 평균 15.6시간이 걸렸다. 통신수사(13.7시간), 검거 전 수사자료의 분석(9.7시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위장 거래활동에는 평균 4.7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힘든 점은 없나.

“봄이나 가을에는 옷차림이 얇아서 괜찮은데 비 오는 날하고 겨울이 정말 힘들다. 밖에서 오래 서있거나 밤을 새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잠복 차량도 필수다.”

-잠복수사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어떤 것인가.

“잠복을 비롯한 마약수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팀워크다. 마약사범은 야간이나 인적 드문 곳에서 주로 활동하고, 흉기를 소지한 경우도 있다. 혼자 움직이면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 잠복 중인 직원들끼리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행동 사인을 맞춰 동시에 검거를 진행해야 한다.”

-마약 투약자들과 몸싸움을 하기도 하나. (영화에서는 “조폭은 타이르면 말을 듣지만 마약범은 눈이 돌아 덤빈다”는 대사가 나온다.)

“많다. 마약중독자는 정신병을 앓는 환자랑 비슷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수사관이나 마약사범 모두 투약자들을 ‘환자’라는 은어로 부른다.) 평상시 그 사람이 가진 힘보다 더 세게 발휘하는 경우도 있고, ‘상대방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환청이나 환각을 듣기도 한다. 경찰관이 제지해도 경찰인지 알아보지 못하거나, 멀쩡히 경찰 조사를 받다가 갑자기 흉기로 자해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사무실도 평범해 보이지만 각자 형사들 서랍에는 호신용 무기 하나씩 쟁여져 있다.”

-영화 속 마약반 형사들은 육탄전에 능한 것으로 그려진다. 실제로도 마약반 형사들이 몸싸움을 잘하는 편인가.

“간혹 사격이나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 지원하는 경우는 봤다. 얼마 전에 우리 팀에도 특전사 출신 수사관이 새로 왔다. 여기 있는 직원들은 대부분 다 운동 유단자다. (김 경감도 대학에서 태권도를 전공했다.) 평상시에도 직원들 밤샘 근무할 때 운동을 많이 한다. 사람을 제압하려면 손목이나 팔 힘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약계 수사관들은 사진이나 인상착의만 보고 사람을 알아봐야 하니까 눈치도 빨라야 하고 순발력도 좋아야 한다.”

-기억에 남는 잠복이 있다면

“제가 인상이 이렇다 보니까….(웃음) 2000년대 초반쯤 조직폭력배로 가장해서 마약 판매상 검거에 성공했던 적이 있었다. (무섭지는 않았나?) 그때는 저도 운동을 오래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은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까 얼굴이 많이 알려져 힘들다. 몇 년전에는 키가 190㎝에 달하는 우리 팀 수사관 한 명이 조직폭력배로 위장해 마약 유통책을 검거한 적이 있었다.”

-잠복수사 하다가 들키는 경우는 없었나.

“상대방이 직접적으로 알아채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마약 단속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는 촉이 있다. 우리가 마약사범에 대해 잘 알듯이, 마약 단속에 많이 걸린 범죄자들도 경찰관을 잘 구별해낸다. 그래서 잠복수사는 늘 신중해야 한다. 경찰과 마약사범 중 누가 잘 속이느냐에 수사 성패가 달렸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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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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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을 검거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

“한 명 잡아서 기소까지 가는데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핸드폰 쓰면 통신 수사해야지, 거래대금 주고 받은 계좌 추적해야지, 자료 분석해야지, 체포·압수수색영장 발부받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할 일이 정말 많다. 체포한 다음에도 끝이 아니다. 영장실질심사 다녀와야 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증거물도 갖다줘야 한다. 특히 요즘은 수사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경찰청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마약류 범죄 피의자 1명을 검거하는데 소요되는 총 시간은 평균 181시간으로 집계됐다.)

김 경감은 또 하나 마약계 수사관들의 ‘주요 업무’가 있다고 했다. 바로 마약투약자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다. 환각이나 환청, 금단증상을 호소하는 실제 환자도 있지만 유치장에서 나가기 위해 꾀병을 부리는 가짜 환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별사람 다 있어요. 환장해요.(웃음) ‘환자’가 아프다 그러면 병원도 데려가야 한다. 안 데리고 가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는다.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하루에 세 번 병원에 데려갔던 적도 있었다. 오전엔 밥 먹다 이빨 아프다고 해서 치과 데리고 가고, 오후에는 발가락 아프다고 해서 정형외과 데려갔다. 진짜 아픈 경우도 있지만 유치장 안에 있으면 답답하니까 나가려고 그러는 경우도 있다.”

-금단증상을 호소하지는 않나

“있다. 다만 병원 데리고 가도 약을 처방해주지는 않는다. 마약사범들이 유치장에 있으면 금단증상을 호소하고, 그러다보니 향정신성의약품 성분이 들어간 정신과 약을 처방받기 위해 공황장애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병원에 안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만일 입원이라도 하면 퇴원 때까지 경찰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도 적지 않게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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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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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감은 언론에 비친 마약 수사관들의 모습과 현실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끔 방송에서 큰 사건을 처리했다는 보도를 보고 ‘나도 마약수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마약 수사 현장에서 느끼는 업무 강도는 상당하다”고 말했다. 위험 부담이 따르는 업무인 만큼 “열정, 사명감, 끈기가 다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마약수사팀 고반장(류승룡)이 “오늘부터 퇴근 없다”는 대사를 한다. 집에도 잘 못들어 갈 것 같다.

“그렇다. 마약사범은 특성상 낮에는 거의 안 움직인다. 야간이나 새벽에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시간에 우리도 일을 해야 한다. 마약사범들이 전국 각지에 퍼져 있기 때문에 부산이나 대구, 진주 등으로 한 달씩 출장을 가기도 한다. (가족들이 서운해하겠다.) 당연하다. 애들은 어렸을 땐 많이 서운해했는데, 지금은 다 커서 포기했다. (웃음) 젊은 수사관들 면접 볼 때도 이런 현실에 대해 미리 설명해준다. ‘몸집이 적어 보이는데 할 수 있겠냐’ ‘가족들 생각도 해야 하지 않냐’고 말린 뒤 ‘그래도 감당하겠다면 오고, 아니면 오지 말아라’고 말한다. 이렇게 대화를 해보면 열의를 느낄 수 있다. 우리 팀 막내는 부천이 집인데, 안암오거리 사무실 옆으로 방을 얻어서 올테니까 받아달라고 했다. 그 정도 마음가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김 경감은 당초 마약 수사와 관련된 인터뷰 요청을 주저했다고 했다. 영화나 뉴스에서 마약 관련 소식이 자주 전해질수록 혹시라도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14년째 마약전문수사관으로 활동해 온 경찰로서 마약투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마약 투여는 본인 몸을 망가뜨리는 일이지만 스스로는 잘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투약량도 늘어나고 금단현상도 심각해지게 된다. 가족들까지 힘들어지고 직장 생활도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 채팅앱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마약 구매에 대한 유혹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호기심에 한번 손을 댔다가는 파멸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마약중독을 이기고 다시금 직장생활을 하는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마약을 끊으려면 자신과의 엄청난 싸움이 필요하다.”

-최근 ‘버닝썬 사건’ 이후 온라인으로 마약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한국이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마약사범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었다는 말은 검거 통계에 의해 뒷받침된다. 다만 정부도 경찰, 검찰, 관세청, 국정원, 식약처 등 여러 부처가 공조하면서 마약사범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 2017년 6월 마약 판매를 광고하는 행위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생기는 등 마약류 범죄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는 추세다.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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