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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프랑스·이탈리아 갈등… 1940년엔 전쟁, 이번엔? [월드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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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양대 강자 프랑스·이탈리아, EU의회 선거 앞두고 '난타전' / 1940년 獨과 싸우던 佛 상대로 伊가 선전포고도… 악연 재현되나?

세계일보

유럽연합(EU)의 대표 국가라 할 수 있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이른바 ‘노란조끼’ 시위 등 문제로 급격히 사이가 나빠지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더불어 EU의 앞날을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과의 전쟁으로 이미 국력을 소진한 프랑스가 부득이 이탈리아에 무릎을 꿇었던 지난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伊 "노란조끼와 연대" VS 佛 "내정간섭 말아라"

10일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는 최근 로마 주재 이탈리아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프랑스 정부는 “대사 소환은 이탈리아 측에 ‘프랑스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이탈리아의 두 부총리가 몇 달째 이어가고 있는 근거 없는 공격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대사 소환은 주권국가가 상대방 주권국가와 외교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선에서는 상대국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항의다.

앞서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부총리는 최근 프랑스를 찾아 노란조끼 시위를 이끄는 크리스토프 샤랑송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는 이탈리아 연립여당과 노란조끼 시위대가 향후 EU의회 선거에서 공조하는 내용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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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노란조끼’ 시위가 벌어져 참가자들이 진압하는 경찰에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마르세유=AFP연합뉴스


프랑스 정부는 일국의 부총리가 이웃 나라를 방문하면서 사전에 이를 고지하지도 않은 외교적 결례에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정부 관계자는 “가장 기초적인 외교적 관례와 예의도 지키지 않았다”면서 “유럽의 통합을 좀먹는 국수주의적인 질병, 포퓰리즘, EU에 대한 불신을 후퇴시키야 한다”고 이탈리아 정부를 맹비난했다.

극우와 반체제 정당이 손을 잡은 이탈리아 연립정부는 지난해 6월 출범 후 중도 그리고 국제주의 성향이 짙은 프랑스 정부와 줄곧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연립정부 실세인 디 마이오 부총리와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내무장관 겸임)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모양새다.

◆'연합국 대 추축국' 엇갈려 싸운 2차 대전 연상

프랑스는 이런 이탈리아의 행보가 노란조끼 시위를 EU의회 선거에서 국수주의 및 포퓰리즘 진영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넘어오려는 이민들 수용을 둘러싼 이탈리아와 프랑스 간 견해차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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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오른쪽)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회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브렉시트로 영국이 EU에서 철수하면 이탈리아는 EU 역내에서 독일, 프랑스에 이은 3위 경제대국이 된다. 그간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 중심으로 이뤄진 EU 운영에 이탈리아가 도전장을 던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는 19세기 중반 통일 이후 프랑스와 대체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것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을 계기로 급변했다. 이탈리아는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의 도움 요청을 받고 뒤늦게 전쟁에 뛰어들어 승전국이 되었으나 전후 기대했던 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자 영·불과 등을 지게 됐다.

1920년대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출범하면서 이탈리아는 영·불 중심의 유럽 질서에 반기를 들고 지중해의 새로운 패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1935년에는 아프리카의 몇 안 되는 독립국인 이디오피아를 침공했다가 국제연맹(유엔의 전신)이 제재를 받자 아예 연맹을 탈퇴했다.

2차 대전 발발 후 이탈리아는 한동안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이 승승장구하고 급기야 1940년 6월 프랑스마저 독일에 패색이 짙어지자 이탈리아는 독일 편에 서서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당시 이탈리아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프랑수아 퐁세는 “이미 땅에 쓰러진 사람에게 다시 비수를 찌르는 것”이란 말로 이탈리아를 맹비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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