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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연습생은 지금] ② ‘폭행·성폭력’ 범죄의 경계에 선 소속사와 연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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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트와이스, 엑소처럼 찬란히 빛나는 스타가 되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는 존재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연습생’이라 부른다. 목표를 이루는 그날을 위해 배우고 또 배운다고 해서 익힐 ‘연(練)’, 익힐 ‘습(習)’, 사람 ‘생(生)’을 쓴다. 하지만 특별한 재능과 운을 소유한 0.1%를 제외한 99.9%의 연습생들은 냉혹한 현실과 맞딱드리며 남몰래 눈물 삼키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여전히 ‘을 중에 을’ 취급을 받으며 인권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는 연습생들의 현재와 그들을 위한 작은 변화의 움직임들을 살펴보려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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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net, MBC, JTBC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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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곽민구 기자] 연습생 성폭력, 가혹한 폭력, 스폰서의 은밀한 유혹 등 연습생 관련 사건·사고들은 잊힐까 하면 한 번씩 터져나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이런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연습생들은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면 가장 많은 연습생을 울린 범죄는 무엇일까?

법무법인 예율 최용문 변호사에게서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최 변호사는 “연습생에 얽힌 문제 중 가장 상담이 많았던 건 폭언에 대한 부분이다”고 밝혔다. 애정 어린 조언의 탈을 쓴 폭언은 연습생들로부터 가장 많은 눈물을 쏟게 했다.

데뷔가 목표인 연습생과 평가를 통해 데뷔조를 선정하는 소속사 관계자만큼 갑과 을이 확실한 관계는 없다. 대형 기획사의 경우 다수의 연습생이 끊임없는 평가를 통해 데뷔 조에 들어갈 우수 연습생을 뽑는 경쟁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보니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해 특정 연습생을 성장시킬 필요가 없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소 기획사는 현재 연습생의 성장이 더디다고 해서 또 다른 연습생을 찾아 재투자에 나설 시간이나 재정의 여유가 없다. 벼랑 끝에 몰린 소속사의 조급함은 폭언이나 폭력을 유발하는 촉매제가 된다. 이런 환경적 차이가 소속사와 연습생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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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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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팩트 폭행’과 ‘폭언’의 경계

사전적으로 ‘폭언’은 몹시 거칠고 사납게 하는 말을 의미한다. 법적으로는 인격 모독, 무시, 비하, 욕설 또는 비속어, 성희롱 등이 ‘폭언’에 해당한다. ‘폭언’에 대한 연습생과 소속사 관계자의 생각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폭언에 대한 개념은 비슷했지만, 그 수위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연습생이 두려움을 느끼는 폭언의 경우는 다수 존재했다. 소형 기획사에서 1년여 연습생 생활을 해온 B는 “폭언은 하루의 일과다. 안무와 보컬에 대한 미션을 주고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욕설 또는 비하하는 말들이 쏟아진다.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건 다이어트와 관련된 말들이다. 조금이라도 체중이 늘면 다른 연습생들 앞에서 면박을 준다. 수치심을 느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고백했다.

중소 연예 기획사에서 걸그룹 세팅부터 데뷔까지를 지켜봐 온 매니저 C는 “큰 회사들은 신인개발팀과 매니저의 일이 각각 분리돼 있지만 작은 회사는 그렇지 않다. 그러다 보니 현장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경험한 매니저의 조급함이 거친 말로 연습생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또 소속 연습생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면 상사나 대표에게 책임 추궁을 받게 된다. 대형 기획사는 따라오는 친구들만 데려가면 된다. 하지만 소형 기획사는 재원이 많지 않아 큰 문제가 없다면 모두 데려가야 한다. 그러려면 뒤처지는 연습생을 성장시켜야 하는데, 팩트 폭행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검증된 방법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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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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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생 되면 성추행 당하나요?

‘성추행’은 일방적인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하여 물리적으로 신체 접촉을 가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말한다. 법률적으로는 성적 수치,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체의 신체 접촉을 성추행으로 보게 된다. 미디어를 통해 안 좋은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혔기 때문일까. 연습생을 희망하는 이들 중 성추행의 두려움이 의외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연습생들에게 성추행은 두렵긴 해도 낯선 단어임이 분명했다.

연습생 B는 “솔직히 어느 정도가 성추행인지 잘 모르겠다. 댄스 수업을 하다 보면 신체 접촉이 있긴 한데 그건 수치심을 느끼는 부분은 아니고, 가끔 동성의 소속사 직원분이 다이어트를 지적하며 복부 쪽을 찌르는 행동을 하는데 그건 수치심을 느끼긴 하지만 성추행이라고 말하기는 그렇다. 주위의 다른 연습생들에게 물어봐도 ‘연습생 성추행’에 대한 소문은 많은데 보거나 당했다는 실제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예 기획사 관계자 D는 “연습생 성추행은 규모와 상관없이 제대로 된 기획사라면 절대 금기시되는 부분”이라고 단언하며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10여 년 전 무분별하게 기획사가 만들어지고, 소문이 잘 퍼지지 않던 시절에 벌어졌던 일들이 대부분이다”고 선을 그었다.

K-POP의 달라진 위상도 ‘연습생 성추행’ 예방의 큰 도움이 되고 있다. D는 “예전에는 부모님의 반대 속에서 홀로 가수를 준비하는 연습생이 많아 문제가 생기면 꿈이 좌절될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에 피해를 봤음에도 쉬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젠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과 관리 속에서 소속사를 찾는 연습생들이 많아졌다. 또 K-POP의 큰 성장과 함께 정부와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산업 분야가 되다 보니 연습생 보호 정책이 빠르게 제도화되고 있다”고 업계의 변화를 설명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남자 아이돌 연습생 성추행' 논란이 연예계의 달라진 분위기를 증명한다. 남자 아이돌 연습생 6명은 지난해 9월 일본 동경의 한 횟집에서 회식 도중 소속사 대표와 그의 동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두 사람을 고소했다. 소속사 측은 연습생들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고, 양측의 입장은 팽팽히 갈리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10년 전이었다면 이와 같은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고된 연습생 생활의 막바지,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상황과 마주하더라도 눈 한번 질끈 감으면 꿈에 그리던 데뷔를 할 수 있기에 '참아보자'는 게 보편적인 연습생들의 정서였다. 그로인해 알려지지 않은 성추행 등의 범죄가 연예계에 빈번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정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 예전에는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또 다시 기획사를 만드는 데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양한 경로로 연습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기 때문에 연습생 관련 범죄를 저지르면 업계 재진입이 어려워진다.

이런 변화로 강제 추행은 현저히 줄었지만 그루밍(Grooming) 성범죄라는 또 다른 위험성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수년간의 힘든 연습생 기간을 함께 해오며 위로를 준 조력자라는 특수한 관계성이 그루밍 성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것. 뒤늦게 그루밍 성범죄임을 깨닫는다고 해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쉽지 않다. 또 ‘데뷔 무산’이라는 리스크까지 감내해야 하기에 연습생들은 용기를 내기가 더 어렵다. 또 ‘애정’으로 포장된 성범죄는 유죄를 입증하기조차 어렵기에 이에 대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연습생은 지금] ① ‘눈물’조차 아름다운?…‘잔혹동화’ 같은 현실의 단면

[연습생은 지금] ② ‘폭행·성폭력’ 범죄의 경계에 선 소속사와 연습생

[연습생은 지금] ③ ‘표준계약서’ 과연 인권 개선의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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